day-57
1
소설을 쓰고 싶다. 퇴근을 한 뒤에 새로운 세상으로 출근하는 기분일 것 같다. 언젠가는 꼭 신춘문예에 내 글을 보내보겠다는 꿈도 갖고 있다. 시작하는데 큰 힘이 드는 일은 아닌데도 아직 못하고 있다. 상상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해야 하는데 미뤄둔 일들이 머릿속에서 우선순위를 다투는 상황에서는 쓰기가 어려운 것 같다.
2
다 핑계다. 작년에 안식휴가를 다녀와서 확실히 알았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회사 일 때문에 못한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특히나 반드시 낮시간에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것들은 더욱 그렇다. 시간 없어서 못하는 줄 알았던 조깅은 하루 종일 놀아도 하지 않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하루 종일 랩탑을 끼고 있는 생활을 할 때 한 줄이라도 적기가 좋았다. 놀고 있을 때는 PC를 여는데조차 더 큰 에너지를 써야 했다.
3
이야기를 쓰겠다는 나의 상상은 달콤하다. 향긋한 차를 놓고 생각나는 것을 타닥타닥 써나가는 내 모습.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쓴 작가들의 삶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소설가 박상영 씨는 매일 아침 두 시간 일찍 출근해서 회사 근처 카페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저녁 약속도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쓴다는 건 그런 일인 것 같다. 남는 시간에 사치스럽게 감정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그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다른 시간을 희생하는 것.
4
학창 시절 독학으로 등단한 친구는 단어 하나를 잃을 수 없어 벽지에 까지 메모를 했다고 한다. 친구를 십 년 넘게 지켜보면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타인의 작은 아픔에도 자기 몸을 떨어야 하는 일임을 알았다. 언젠가 쓰는 일을 다른 직업으로 삼게 되더라도, 그때의 삶도 마냥 꽃길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꼭 쓰겠다는 생각을 놓지 않는 걸 보면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다. 포풍 같은 수다와 매일 일기로도 모자라서 이야기까지 지어 쓰겠다는 이 텐션 어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