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주일!
보건소에서 자가격리 통보를 주말에 받아서, 성남시에서는 월요일에 연락이 왔다. 아침 9시도 안돼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비몽사몽 전화를 받았는데 오후에 집으로 와서 비대면으로 체온계 등을 전달해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무원 번호를 알려줘서 자가격리자안전보호 애플리케이션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담당 공무원 번호를 넣고 시작하면,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8시에 체온을 재서 입력해달라는 알림이 온다.
공무원이 가져다준 꾸러미에는 마스크와 손소독제, 뿌리는 소독제, 체온계가 들어있었다. 뿌리는 소독제가 집에 없었기 때문에 꽤 유용했다. 남편은 매일 아침 소독제를 뿌려서 내가 만진 냉장고 손잡이나 전기 스위치 등을 닦는다. 어쩐지 집안에 걸어 다니는 코로나 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지만 나도 손을 더 자주 닦게 되었다. 날씨가 쾌적하고 바깥공기도 좋아서 낮에는 내내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고 있다. 역시 날씨 좋은 날이 놀기도 좋지만, 일하기도 좋고, 격리하기에도 좋다!
같은 날 오후에 성남시 구호 물품도 도착했다. 커다란 박스가 도착했는데 햇반과 삼분 카레뿐만 아니라 다양한 즉석국과 스팸, 참치까지 들어있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나라에서 먹을 것을 타 먹다니(?) 신기한 일이다. 격리하는 동안 회사에서 유급휴가를 받지 않았다면 격리가 끝나고 지원금도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성실하게 격리를 잘하고 신청해봐야겠다.
실은 격리하는 동안 굳이 휴가를 받는 것보단 일하는 게 더 낫긴 하다. 일단 일하는 동안에는 방에 들어가서 하는데 괜히 집안을 휘젓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시간도 잘 간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추석 연휴라서 마스크를 쓰고 거실 바닥을 뒹굴고 있다. 그동안 못 봤던 마블 시리즈도 보고 밀린 영화를 청산할 계획이다. 오늘은 제일 보고 싶었던 블랙 위도우를 볼 생각인데 어제 미리 찾아보니 가격도 내렸더라. 단돈 오천오백 원!
집안에 가족이 있는 상태에서 격리를 하게 되면 일단 무척 상전이 된다. 일단 요리를 할 수 없고, 어딜 만지든 전부 오염물질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손가락 까딱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선풍기를 켜도 안되고, 빨래를 널거나 개도 안되고, 냉장고에서 직접 음료수를 꺼내 먹어도 안된다. 성격이 급해서 자꾸 냉장고를 직접 열어 제끼는 통에 남편이 열지 말고 먹고 싶은걸 말하라고 했는데, 어찌나 상전이 된 느낌인지. 그래도 격리자인데 문을 열고 택배를 들이는 건 좀 꺼려져서 택배가 올 때마다 남편에게 공손하게 택배를 들여달라고 부탁했다. 자가 격리자가 되니까 이상하게 인터넷 쇼핑을 많이 하게 된다.
가장 잘 산 물건은 역시 식판이다. 식기를 따로 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과제다. 남편은 내가 쓴 식기를 모아두었다가 따로 설거지를 한다. 식기세척기를 돌릴 때도 두 번에 나누어 돌린다. 부엌에 들어가보니 남편이 내가 쓴 식기를 두는 곳을 따로 마련해서 곱게 모아둔 걸 보고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긴 했는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곱게 밥상을 받아먹고 마스크 쓰고 소파에 찌그러져 있으면 남편이 또 곱게 치워준다. 이번에 상전 취급을 받아보며 깨달은 건데 성격이 급한 사람은 상전 취급이 성미에 맞지 않는다. 내가 빨리하면 되는 간단한 일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괴롭다. 물려받은 성미이니 내 조상들도 양반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해본다.
무려 석 달전에 미리 구매해놓고 기다린 사과떡볶이가 시기적절하게도 이 타이밍에 배송이 왔다. 여름에 사서 가을에 먹는 떡볶이라니! 떡볶이가 아무리 맛있어 봐야 떡볶이지,라고 생각했으나 눈알이 튀어나오는 맛은 아니더라도 맛이 있긴 맛이 있었다. 사서 먹어본 떡볶이 중에서는 제일 맛있었다. 특히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나와 매운 걸 전혀 못 먹는 남편에게는 달달한 맛이 아주 딱이었다. 안 매운 떡볶이를 원하는 이에게 추천할만하다. 물론 우리는 달달한 맛도 빨간 양념을 삼분의 이만 넣어서 먹고 있다.
격리한 지 오늘로 열흘쯤 되었는데 지금까지 열이 나거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서 이제 안심이 된다. 보통 코로나 증상은 열흘 내로 발현이 된다고 한다. 그간 코로나에 정말 걸리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불안하기도 했었다. 그런 점도 국가가 신경을 써주고 있는데, 격리한 지 닷새쯤 되었을 때 심리지원 관련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로 자가 격리하는 사람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까지 신경 써주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우리나라는 원래 정신과 가는 것을 쉬쉬하고 정신적 어려움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나는 특별히 힘든 점은 없어서 상태가 괜찮다고 답변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연휴만 무사히 잘 보내면 격리가 끝난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시댁도 친정도 가지 않는 추석이다. 시부모님이 연휴에 다른 볼일 있으시다고 오지 말라고 하셔서 친정 가서 반찬만 털어올 계획이었는데, 꼼짝 않고 집에 있게 되었다. 엄마가 쓸쓸하지 않을까 했는데 전화해 보니 반찬 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오빠가 예비 신부 데리고 집에 온다고 해서 분주한 모양이다. 가족 모두 쓸쓸하지 않은 추석이라 다행이다. 땅의 사람들은 전염병 때문에 난린데 하늘은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림 같은 가을 하늘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하늘 멍 때리기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