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ie Sep 25. 2021

자가격리 끝!

생각보다 빠른 2주

자가격리 막바지가 되면 생각보다 사람 마음이 헐렁해진다. 코로나 잠복기간은 평균 5~6일이라고 하니 일주일쯤 지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열흘이 지나면 이제는 뭐 격리를 끝내도 되지 않나,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들어 거실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을 때도 있었다. 반면 남편은 격리 해제 전날 밤까지도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대단히 철저한 사람이었다. 


집에서 자가 격리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안에 쓰레기가 쌓이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가 되었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동거인이 외부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분리수거를 해줘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것마저도 내가 먹은 도시락은 분리수거로 분류하지 않고 따로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나를 거친 쓰레기들은 별도의 쓰레기통에 모았다가 격리가 끝나고 일반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렸다. 격리를 하면서 인간을 접촉으로부터 떨어뜨리는 일이란,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과거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전염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오늘날에도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격리 초반에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시간이 잘 갔고, 연휴에는 각종 소일거리로 하루를 채웠다. 시간을 많이 소진시켜준 일에는 팥 찜질팩 만들기 미션이 있었다. 추석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팥을 2킬로 주문해두었다가 연휴에 작업을 했다. 팥을 씻어서 말리고, 도안을 그리고, 속과 겉 주머니를 각각 만들었다. 팥 찜질팩 가격은 생각보다 비싼데 속을 채운 팥의 원산지가 국산인 경우 좀 더 비싸다. 직접 만들면 국산 팥을 원하는 만큼 채워서 만들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시간이 엄청 잘 가서, 격리기간에 추천할만한 활동이었다.


팥찜질팩을 만드는 지난한 과정


격리기간에 꽃을 사는 것도 매우 추천할만하다. 요새는 꽃 배송도 택배로 잘 오기 때문에 나가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그리고 꽃병의 물을 매일 아침 갈아주면서 줄기 끝을 잘라주는 과업을 수행하는데 역시 소일거리라서 시간 소진도 잘 되거니와 식물을 만지면서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집안 곳곳의 아름다움은 덤! 내가 산 꽃다발에는 카네이션과 장미, 국화 등이 섞여 있었는데 국화가 정말 오래가서 격리가 끝나고 나서 까지도 집안을 밝혀 주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공무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격리 해제 당일이 추석 마지막 날이라서 별도의 격리 해제 알림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해당 일자의 정오에 격리 해제이니 격리자용 애플리케이션은 지우면 되고, 바깥 활동을 해도 된다고 했다. 격리자용 어플은 추석 연휴에 다소 나를 괴롭혔던 게, 오전 중에 체온을 입력해야 해서 늦잠을 오후까지 잘 수 없었다. 오전에 11시 반쯤 눈을 떠서 그냥 더 잘까 생각도 했는데 미입력으로 어디서 전화 올까 봐 무서워서 꼬박꼬박 일어나서 체온을 입력했다. 생각해보니 체온계를 침대 옆에 두고 자면 될걸 왜 거실에 두었지? 


격리 해제 전날에는 다음날 어디 가서 뭘 할까 열심히 검색을 하다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따로 만든 남편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화장실도 다시 한쪽으로 합치고 집안 정리를 부지런히 했다. 그리고 연휴에 문 연 식당을 찾아서 오래간만에 외식을 했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오래간만에 나오니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밖에서 밥 먹으면서 살고 있었구나, 새삼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람 많은데 있다가 또 격리하게 되는 게 아닐까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두 번은 할 수 없다!


밥 먹고 청계산 산책길을 걸었다. 마스크 속으로 숲 속의 상쾌한 공기가 들어왔다. 근처에 살면서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청계산이었는데, 격리 끝나니 자연스럽게 이런 데를 찾아서 오게 되었다.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오래간만에 자연이 주는 상쾌함에 등산화를 한 번 사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승전 쇼핑으로 연결되는... 자가 격리하는 동안 늘어버린 쇼핑력을 실감했다.


오늘 아침에 뉴스 알림봇을 확인했는데 확진자가 삼천 명을 넘었다. 다시 자가 격리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천 명이든 삼천 명이든 다 남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저 숫자들이 내 주변의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게 더 실감이 났다. 그리고 나도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곧 2차 백신 맞을 날이 다가오는데 얼른 백신 맞고 광명을 찾아야겠다. 곧 미국 여행이 더 쉬워진다고 지난주에 항공주가 꽤 올랐다고 하던데, 코로나가 끝난다는 예언은 가깝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형편이라 한숨 나온다. 이번 주에는 추석에 못 간 친정에 가서 반찬을 쓸어와서 집밥을 열심히 해 먹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