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ie Nov 21. 2021

진심이라는 것은

요즘 최애 프로그램은 '위대한 수업'이다. EBS에 세계 석학들이 나와서 전문 분야에 대해 강의를 해주는데, 20분 남짓한 짧은 강의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부담 없이 분야의 거장들을 만날 수 있다. 인트로는 강연자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데, 최근 조지프 르두라는 신경과학자 한 분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나왔다. 그분은 밴드 아미그달로이드의 보컬이라고 한다. 편도체 연구하시는 분이 '편도체 밴드'라는 걸 만든 셈이다. 노래 가사에도 이론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미묘하게 교육적이라 노래 듣다가 빵 터지고 말았다. 가장 빵 터지는 포인트는 조지프 르두 교수님이 정말 진지하시기 때문이다. 


조지프 르두는 과학에 전혀 뜻이 없었는데 어쩌다 과학자가 된 케이스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그리고 당시 편도체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그 분야를 연구해서 성과를 거두었다. 마지막 강의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아직도 많이 연구되지 않은 분야라며 많이 연구해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교수님은 진심이시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뇌에 대해 계속 궁금해하고, 뇌에 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노랫말을 만들어 노래하시는 그런 분. 


진심이라는 단어와는 슬픈 추억이 하나 있다. 오래전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정치인의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쓰라는 내용의 시험 주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진정성을 진심과 연결 지었는데, 정치인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정의 내릴 수 있었지만 그걸 꺼내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진심인 정치인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도 없었고, 주어진 시간 동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시험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조지프 르두 교수님을 일찍 일았더라면 정치인이 보수 밴드라도 결성해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면 된다고 썼을 텐데! 반은 농담이지만, 조지프 르두를 보면서 어쩌면 진심이란 이렇게 쉽게 드러나고 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누군가 나를 HR변태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진심인 것을 알아준 것 같아서 고마웠다. 진심이란 그렇게 그냥 가지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코칭을 배울 때 고객에 대한 호기심을 잃으면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호기심을 잃는 순간 질문은 진심이 아니다. 언젠가 고객으로 코칭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내 고민은 날카로운 피드백을 준다는 코치님에게 가르침을 받아보고 싶은데, 칼같은 피드백을 받고 상처 받을까 봐 두렵다는 내용이었다. 코치님은 그렇게 걱정되면 그 코치님에게 코칭 안 받으면 되지, 왜 굳이 그렇게 하려고 하는지 답답하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말씀을 직접 하지는 않고 다른 질문을 이어가주셨는데, 놀랍게도 나는 그 코치님의 답답한 감정과 나에게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느낄 수 있었다. 시선만 따라가도 그 사람이 누구를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진심은 쉽게 드러난다. 지금 그 논술 시험을 다시 친다면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팀원이 생기고 나서 가장 주의하려고 한 것도 내 진심에 대한 것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팀원에게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나의 기준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지금 이 말을 하지 않고도 좋은 마음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는가? 만약에 마음에 앙금으로 남을 것 같다면 나는 그 마음을 팀원에게 감춰야 하는데, 나는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남을 것 같은 일이라면 꺼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는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다. 한 번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전후 맥락을 설명해줘서 팀원을 훨씬 잘 이해하게 되었던 일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다. 가짜인 마음이 아니라 진짜 온전한 마음을 내보이면서. 


진심을 보이는 일은 쉽지만, 생각보다 품이 드는 일이다. 마음을 자주 청소하고 빨래해서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정돈하지 않으면, 그걸 그대로 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구겨진 부분은 다리고, 더러워진 부분은 잘 닦아야 하는데, 마음의 청소는 방 청소보다 훨씬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나의 에너지 관리가 제일 중요하다. 내가 마음이 괜찮은지 살피고, 어디가 구겨졌는지를 보는 일을 나는 주로 일기를 쓰면서 한다. 오늘은 이런 일기를 쓸 수 있는 걸 보니 마음이 괜찮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가격리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