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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ie Dec 26. 2021

호랑이 이즈 백

신년 목표에 대해서 생각하기

나이가 들긴 드는 건지, 부쩍 시간이 빠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을 텐데, 언제 6학년이 되려나 새해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때와 다르게 삼십 대 중반에 연말을 맞는 마음은 사뭇 아쉽다. 올초에는 신나는 마음으로 엽서에 목표를 적어 내려가기도 했었다. 그때는 새해에 팬데믹이 끝날 거라는 희망에 차있었다. 마침 안식휴가도 나오기에 겨울엔 따듯한 나라에 가서 해를 쬐어야지, 그런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11월에 안식휴가가 나올 때까지도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다. 


매년 새해 목표가 되는 것 반, 안 되는 것 반이지만 그래도 연말이 되자 내년 계획을 어떻게 세워볼까 고민해보게 된다. 그래서 코칭 연습을 하는 버디에게 내년 새해 계획을 어떻게 세워보면 좋을지 코칭을 받았다. 대화 중에 무심코 어차피 계획대로 안 되겠지만 그래도 계획을 세워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코치님이 이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끔 해주었다. 


나는 남에게 하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자 노력하는데 왜 나와의 약속은 이렇게 가벼웠을까? 내가 신년 목표라고 생각한 것이 나와의 약속이기는 했나? 어차피 다 지킬 생각은 없었는데? 그렇다면 나는 어차피 지키지 않을 목표들에 대해 왜 정성을 들여 생각하고 예쁘게 적어서 벽에 붙여놓았을까? 늘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미스터리 하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나라는 사람이 제일 미스터리다. 


목표의 가장 단골손님은 영어공부다. 열두 살부터 하던 공부가 서른여섯이 되도록 진도가 안 나가서 다시 적히는 바로 그것. 그 외에는 꾸준히 운동하는 목표도 있고, 책 읽기도 있고, 새로운 요리 다섯 가지 해보기 같은 것도 적혀있다. 2021년 초에 나는 꾸준히 하고자 하지만 잘 안 되는 것과 좀 더 내 몸을 챙기고자 하는 것들을 적어두었다. 


엄청 많이 적은 이유는, 그냥 이것저것 생각이 나서 그랬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은 안되는 것들이 이미 너무 많이 입력되어 있다. 그리고 우선순위 없이 무작위로 적었는데 거기서부터가 문제였을까. 몇 가지는 필터링을 해서 줄여볼 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나 자신과 정말 하기로 약속했다면 아마도 나는 했을 것이다. 나는 백일 글쓰기도 삼백일이나 꾸준히 한 의지의 한국인인데. 신년 목표는 적당히 훌렁훌렁 적고,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했던 것 같다.


며칠 전 친구가 온라인 연말 파티를 열었다. 모니터로 반가운 얼굴을 보며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는데, 갑자기 끝나기 전에 3개월 내에 이룰 목표를 하나씩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3개월 뒤에 온라인 모임을 또 열어서 확인을 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미리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같이 영어 수업하는 모임이라 그냥 영어 선생님이 만들어준 책 한 권을 복습하고 만나겠다고 덜컥 약속했다. 방문을 닫고 나오는데 내 모습이 웃겼다. 신년 목표를 얼마나 잘 세우고, 그걸 가지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이렇게 뜸을 들이고 고민을 했을까. 이렇게 순식간에도 되는 거였는데. 게다가 3개월 목표를 네 번 세우면 그게 일 년이다.


엠마의 그 물음 덕분에 다음 3개월 목표가 뙇, 하고 생겨났다. 사람들과 함께 한 약속이라 더 지키기도 쉬울 것 같다. 물론 그 목표가 있다고 신년 목표 세우기 이벤트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정리가 된 느낌이다. 3개월마다 꼭 지킬 목표 만들기. 신년 목표 너무 많이 쓰지 말기. 썼다면 우선순위 만들기.


신경을 전달하는 세포도 노화가 온다고 한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건 신경 전달 속도가 느려져서 그만큼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는 과학적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을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나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닐까. 미래의 나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보고 싶은 사람들을 더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는 2022년을 보내고 싶다. 호랑이가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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