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퇴사
진짜로 카카오를 떠나는 날이 오다니. 이제 일주일이면 정리하게 될 텐데,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어디 가냐고 사람들이 물어오는데 창업한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멋쩍다. 더 이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왔다 갔다 하는 투자계약서를 보면서도 대표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런 마음이다. 창업가로서 준비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아마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언제는 뭐 준비가 되어서 했었나. 하면서 알아가는 거지.
카카오에 오면서 처음으로 인사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와서 일을 많이 배웠다. 입사 첫날 맡게 된 업무는 신규 입사자 온보딩. 연말이 되자 평가보상 업무를 맡았고, 연초가 되니까 영입을 맡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결국 피플 애널리틱스까지 왔다. 퇴사하면서 정리해야 하는 업무는 내가 관리하는 파이썬 서버를 인수인계하는 일이다. 코딩의 키읔도 몰랐던 내가 서버를 넘기면서 퇴사하는 날이 오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다.
오랜 기간 회사에 있다 보니 업무 담당자들을 잘 알고 있어서 그간 일하는 것이 수월하기는 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어디 가서 누구에게 물어보면 되는지 금방 찾고, 가서 읍소하면 또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막상 떠나려니 그간 도움받은 고마운 분들이 많이 떠오르는데, 비대면 상황이라 고마웠던 마음만큼 인사를 챙길 수가 없어서 아쉽다.
왜 퇴사하는지 생각해보면, 예전에 퇴사 면담을 했던 분과의 일화가 떠오른다. 당시 회사도 커지고 서비스도 성숙기에 접어들던 시기였는데, 본인이 그런 상황과 잘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얼른 만들어서 반응을 보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좋은데, 이제 서비스가 거대해져서 그런 식으로 일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은 회사가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냥 맞춰서 일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때는 고개를 갸웃했는데 이제는 무척 공감이 된다.
내가 일하는 환경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한 팀에서 인사의 모든 기능을 소화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규모도 커지고 팀 숫자도 훨씬 많아졌다. 또 여러 계열 회사가 생겨나면서 일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도 다양해졌다. 그중에는 사람 간의 관계 같은 것들도 있다.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니 당연히 잘 생각해서 일하는 지혜가 필요한데,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계속 걸림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 볼 때도 있었는데 그런 상상들이 작은 회사의 인사 책임자로 회사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의 씨앗이 되었다.
'스타트업에 처음으로 조인하는 인사 담당자가 되고 싶어.' 그 말을 몇 년 전부터 하고 다녔더니, 친구가 같이 회사를 하자고 제안해 왔다.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고 다니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새롭게 조인하는 팀이 무슨 일 하는 곳인지는 다음 일기에서 계속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