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Hello'
내가 다니는 골프 연습장은 오피스 빌딩 지하 1층에 있다. 건물 로비에 들어서면 우측벽에 입주한 모든 회사의 이름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전교생 이름표를 붙인 것 같은 압도적인 벽을 지나면 비죽 튀어나온 엘리베이터 줄을 만나게 된다. 회사가 많은 만큼 출근 시간 엘리베이터 체증이 심한데, 내 운동 시간이 아침 8시 40분인 탓이다. 줄을 마주칠 무렵 경비 아저씨가 정확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처음 운동하러 가던 날 운동복 차림의 나에게 누군가 정중히 인사를 해서 깜짝 놀랐다. 큰 키의 중후한 경비원은 인포 데스크 옆에 곧게 서서 건물 로비로 들어서는 모든 사람에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골프 연습 기간이 반년을 넘어가면서 이제는 모자를 쓰고 가면 로비에 들어서면서 벗는다. 아저씨에게 나도 고개 숙여서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기는 왠지 쑥스럽다. 아저씨는 사람 많은 로비에 목소리가 울릴 정도로 소리 내서 인사를 해주고 계시는데도.
최근 지인이 팀원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것을 들었다. 특별히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닌데, 사무실에서 다크한 기운을 뿜는다고 했다. 말을 걸기도 어렵고 어둡단다. 그래서 그에게 밝게 인사를 해보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검은 롱패딩을 입고 로비로 들어서는 나를 떠올렸다. 겨우 주머니에서 손을 빼서 꾸벅 인사하고 지나가는 나도 어둡게 보이지 않았을까. 거기서 소리 내서 밝게 인사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인데. 팀원에게 건넨 조언이 너무 어려웠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갔던 첫 회사에서는 사전 교육을 시켜줬다. 외부 강사가 들어와서 신입 사원은 회사에 들어가서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그냥 크게 인사를 하면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우리층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옆 팀 분들과도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 팀에는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도 있었다. 옆팀 차장님이 하루는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고 동기의 옷차림에 대해서 지적했다. 그리고 가서 좀 전해주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하지는 않았다.
인사를 많이 해서 그렇게 큰 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누구를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큰 비용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는 고사하고 아는 사람에게도 안부를 건네는데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하다. 우리 회사에서는 친구에게 안부를 건네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쉽게 만든다고 노력했는데도 나조차도 질문 보낼 친구들의 목록을 도로록 도로록 둘러보는 시간이 길어질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그 목록을 위아래로 굴려보다가 그냥 앱을 끌 때도 있다.
남편은 아침에 잘 잤냐고 물어봐 줄 때가 많다. 매일 보는 사인데도 매일 잘 잤는지 물어주는 말이 퍽 좋아서 나도 같은 질문을 아침에 해주려고 노력한다. 실은 골프장 건물의 경비 아저씨에게도 소리 내서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드리고 싶기도 하다. 또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데 복잡한 마음에 인사를 보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을 테지.
어제는 결혼 6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그 이야기를 엄마한테 했더니, 엄마가 남편에게 말했다. '엄청 좋았겠네, 그런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참 좋아.' 그리고는 엄마는 친구가 둘 밖에 없어서 아쉽다고 오래오래 잘 만나라는 말을 남겼다. 나의 친구들과 환갑을 넘긴 내 모습을 잠깐 떠올렸다. 잠긴 마음이 졸졸 흘러나올 수 있는 작은 길이 있으면 좋겠다. 마주친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인사를 하고 싶은 상대와는 조금 더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