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
1.
국어사전에는 희망퇴직의 뜻이 이렇게 적혀있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퇴직하는 일. 또는 사용자가 인원 감축을 위하여 종업원에게 퇴직 희망을 물어 해고하는 일.
2
월급을 확인하거나 휴가를 등록할 때 들어가는 인사정보페이지가 있다. 어느날부터 인사정보페이지에 새로운 팝업창이 생겼다. 작고 네모난 팝업창은 나에게 물었다. ‘희망퇴직을 하시겠습니까?’ 그 팝업창에는 ‘오늘만 보기’나 ‘오늘은 그만 보기’ 따위의 기능이 없었다. 나는 인사페이지에 들어갈 때마다 그 팝업창을 꺼야했다. 지겹게 팝업창을 끄는 일보다 심각한 것은 희망퇴직 목표인원이라는 숫자였다. 우리 조직은 목표 감축인원이 30%라는 소리가 들렸다. 세 명 중 한 명은 그만둬야 한다는 소리네. 공교롭게도 우리팀 팀원이 세 명이었다.
3
동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셨다. 친한 사이에도 희망퇴직 할지 말지를 묻는 일은 은근히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희망퇴직할거야. 그러자 천천히 사람들이 돌아가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민 중이야. 나는 안할 거야. 이야기가 다 돌자 우리는 그 숫자를 헤아렸다. 우리 중에 반은 나가기로 마음 먹은거네? 평소 술을 잘 안먹는 모임이라 청하를 시키기 시작했는데, 이날 테이블 위에 빈병 숫자는 세기 어려웠다.
4
나는 모임에서 퇴사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사람 중 하나였다. 목표 감축인원 소문대로라면 우리 팀에서도 한 명은 그만둬야 했지만 예외인 팀도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면담은 예외가 없었다. 평소에는 접촉도 없는 상위직급의 리더가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희망퇴직을 권장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직의 모든 사람에게 그만두라고 권해야했던 그분의 입장도 참… 못할 짓이었겠다 싶다.
5
실장님 방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내가 여기서 이런 말을 왜 들어야하는지 분하고 당황스러운 기분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모든 집중력을 눈물을 참는데 쏟았다. 면담이 끝나고 방문을 닫는데 결국 참지못하고 눈물이 나왔다.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동기 하나를 불러내서 정동길로 산책을 갔다. 카페에서 달디단 커피를 마시면서, 회사 때려치고 3개월 월급 받아서 그걸로 노트북이나 사자고 했다. 그걸로 이력서나 쓰자며 쿨해지려 애썼다.
6
그즈음의 회사 분위기는 슬픈 드라마의 엔딩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실장님 면담을 두 번 했다는 의미는 이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상황을 두 번씩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보다 훨씬 오래다닌 사람도 많았고, 집안의 가장인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난도질 당한 마음을 모른다는 듯 팝업창은 항상 그자리에 떴다. 앞으로 여기에 더 오래 다닐 네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이야기하셨던 상무님은 희망퇴직 프로젝트의 리더였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은 풍경이 그시절의 회사에 있었다.
7
나는 팝업창에 ‘예’라는 버튼을 눌렀다. 그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는걸까, 항상 궁금했지만 누를 수 없었는데, 결국 어느 날 눌렀다. ‘예’라는 버튼을 누르면 ‘정말 희망퇴직하시겠습니까?’ 하고 확인창이라도 한 번 더 뜰 줄 알았는데 그런건 없었다. 시스템은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라고 나에게 통보했다.
8
많은 사람들이 한 날에 퇴사를 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흡사 졸업식에 온 것 같았다. 회사는 원스톱 퇴사부스를 차렸다. 부스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한 큐에 퇴사할 수 있도록 장비 반납, 법인 카드 반납, 사원증 반납, 서명 절차가 이루어졌다. 오전에는 줄이 길다는 소리를 들었다. 퇴사 인사를 메일로 적고 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오후시간에 퇴사 처리를 하러 갔다. 사원증 반납 코너에는 아는 분이 계셨다. 나에게 혹시 사원증 갖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희망퇴직 시키는 회사라고 분개했으면서 뭐가 좋다고, 사원증은 갖고 싶었을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랬다. 분실했다고 적고 기념품으로 가져도 된다고 하셔서 나는 사원증을 기념품으로 간직했다. 그동안의 사내방송에 출연했던 영상도 DVD로 선물 받았다. 그렇게 몇 가지 기념품들과 함께 나는 첫 회사를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