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일기 22편
나는 법인 운영에 관련해서 대표와 의논해서 일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투자를 받기 위한 외부 업무가 많아서 대표도 쫓기듯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 회사 최초의 기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떡하니 나와버렸다. 서비스 런칭기사였고, 심지어 기사 내용에 내 이름도 나오는데? 기사를 보자마자 대표가 바빠서 그랬거니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작성된 내용을 사전에 슬랙에 한번 올려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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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기보다는 약간 화남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대표가 나한테 보도 자료 작성하는 일을 시켰어도 이렇게 화가 났을 것 같지 않은데, 나는 왜 화가 났을까? 나는 적어도 내가 관여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통제력을 갖기를 원하는데, 이 일이 통제력 밖으로 한참 벗어났던 것이 주요했다. 대표에게 새벽에 일하다가 공유를 놓쳤다는 구구절절한 설명을 듣고서야 화가 풀렸다.
나는 통제권이 작동하지 않을 때 이상하게 폭주(?)한다. 단점도 있지만 회사를 운영하면서는 이 성향이 도움이 될 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서 회사가 평가제도를 실시한다면 적어도 3개월 전에는 나에게 알려주겠지? 새로운 인사제도를 만든다면 회사가 구성원 의견도 당연히 들어보겠지? 이런 식의 내가 회사를 통제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사담당자로 일할 때 역지사지가 가능했다. 개인이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는데, 회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싶은지로 생각하면 좀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조직건강성 측정 도구를 만들 때도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서 만들고, 만드는 과정을 누가 보든 말든 전체공개된 곳에 그때그때 기록했다. 생각보다 구성원이 회사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수준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일개 구성원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회사가 구성원 의견을 존중하고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수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범위와 수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재밌는 건, 인사팀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로 수용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안건들을 공개된 곳에 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구성원들도 자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안건에 개입할 수 있고, 담당자도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전통적인 인사조직은 수직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 곳에서는 인사 담당자가 권한이 작기 때문에 진행되는 안건에 대한 구성원 피드백을 수용할 수 있는 룸이 거의 없다. 또 바텀업이 안 되는 조직에서 구성원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이도저도 못하는 궁지에 몰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 보통 인사조직의 안건이라는 것은 보안 정보로 취급된다. 하지만 담당자에게 권한이 충분히 위임되어 있는 경우 많은 안건이 공개될 수 있다. 또 정해지지 않은 이슈들이 오픈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이 정보를 통해 회사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정이 내려졌을 때 구성원들이 쉽게 받아들여줄 가능성도 높아진다.
최근에 팀원 한분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데 회사 서비스와 비슷해서 고민이 된다며 해도 되는지를 물어왔다. 내용을 들어보니 나도 바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다른 구성원들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언젠가 하게 될 수도 있어서 공개된 곳에서 논의를 해도 되는지 물어봤다. 팀원이 수락을 해줘서 공개된 슬랙 채널에 이 이슈를 공유하고 의견을 들어보았다. 아무 댓글을 달지 않은 구성원도 있고, 장문의 의견을 달아준 구성원도 있었다. 나도 그 이야기들을 통해서 새롭게 환기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의 경우 보통 스탭업무를 하는 팀원이 늦게 영입되고, 인사만 담당하는 직원이 생기는 건 더더 느리다. 그래서 인사 담당자가 생겨도 밀린 일에 치이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럴 때는 이슈를 더 많이 공유하고 구성원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예측가능한 회사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슈를 공유한다는 것 자체도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인사담당자라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보안이슈 중에 공개 채널에 적을 수 있는 것이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