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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Oct 26. 2022

일상의 논어 <태백泰伯20>-재난才難


舜有臣五人而天下治 武王曰 予有亂臣十人 

孔子曰 才難 不其然乎 唐虞之際 於斯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三分天下有其二 以服事殷 周之德 其可謂至德也已矣

순유신오인이천하치 무왕왈 여유란신십인 

공자왈 재난 불기연호 당우지제 어사위성 유부인언 구인이이 삼분천하 유기이 이복사은 주지덕 기가위지덕야이의


-순임금에게는 신하 다섯 명이 있어 천하가 다스려졌다. 무왕은 말했다. "나에게는 난세를 함께한 신하 열 사람이 있었다." 

공자가 말했다. "인재를 얻기란 어렵다. 그렇지 않느냐? 요순시절 이래 이때가 절정이었다. 부인이 포함되니 아홉이었던 셈이지. 셋으로 나뉜 천하 중 둘을 가졌음에도 몸을 낮춰 은나라를 존중했으니 주나라의 덕은 지극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난신'은 나라를 어지럽게 만드는 역신의 개념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쓰여 위와 같은 의미가 됩니다. 구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하늘을 여는 시기란 난세일 수밖에 없지요. 


'당우'는 당나라와 우나라의 뜻으로 각각 요와 순임금이 다스렸던 나라를 말합니다. 그래서 삼황오제 중 오제를 일반적으로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당요唐堯, 우순虞舜'이라고 부릅니다.  


는 '즈음'의 뜻이고 '어사위성'은 '그때를 한창으로 함'의 의미이니 '당우지제 어사위성'은 '요순시절이 절정이었다'와 같이 해석할 수 있으나 그리하면 이어지는 구절과 문맥이 맞지 않으니, 위와 같이 풀이해야 합니다. 


'이복사은'을 '복종하여 은나라를 섬겼다'와 같이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紂를 쳐낸 혁명이 성공했지만 무왕 사후 당연하게도 은나라 왕실과 신하들이 포함된 잔존 세력의 저항이 이어졌습니다. 난을 평정한 후에도 주나라는 은의 세력을 힘으로 억압하는 대신 봉토를 제공하여 제후로 삼고 그들의 자식을 중앙에 볼모로 두는 봉건제를 시행했지요. 그 과정에서 은나라의 문물과 제도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 원활히 이루어졌음은 물론입니다. 


이전 정권 및 야당에 대한 폄훼, 모략, 탄압에 여념 없는 현 정권의 통치 철학은 '선택적 수사搜査'로 압축됩니다. 자기 편에 대해서는 '부인, 회피, 무시' 전술을 쓰고, 상대 진영에 대해서는 '낙인, 창피, 다시' 작전을 일사분란하게 전개합니다. '낙인 찍고, 창피 주고, 다시 엮고'이지요. 그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것은 항상 법입니다. 법에는 틈과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마치 법이 세상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잣대인양 자신들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국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지요.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해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쓰인 대로 법을 시행해야 한다(The legislation is what it is and we have to implement the law that was written)"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마치 우리의 위대하신 리더께서 대선 후보 시절에 했던 심오한 발언("외교관계는 민주주와 인권이라는 가치에 입각해서 국제사회에 축적된 예측가능한 법치에 기반해서 하겠다")에 대한 화답처럼 느껴져 웃음이 났습니다. '니들이 좋아하는 법대로 하자는디 뭐가 문제여?'라는 뉘앙스가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뉘앙스가 제게 전해진 것도 자유, 웃음이 난 것도 자유이니 거룩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뉘앙스의 이동과 표정의 무조건반사까지 트집 잡지는 않겠지요?


무왕에게는 열 명의 신하가 있었다는데 지금 이 나라에 찾아온 난세를 극복하는데 힘을 보탤 '난신'들은 누구일까요? 있기는 할까요? 사실, 궁금해서 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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