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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Nov 14. 2022

일상의 논어 <자한子罕11>-기천欺天

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病間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誰欺 欺天乎 且予與其死於臣之手也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 且予縱不得大葬 予死於道路乎

자질병 자로사문인위신 병간왈 구의재 유지행사야 무신이위유신 오수기 기천호 차여여기사어신지수야 무령사어이삼자지수호 차여종부득대장 여사어도로호


-공자가 병을 앓자 자로가 제자들로 하여금 시중들도록 했다. 병세에 차도가 있을 때 공자가 말했다. "오래되었느냐, 유가 거짓을 행한 지가? 가신이 없는데 있는 척 하다니 내가 누구를 속일까? 하늘을 속일까? 또한 내가 가신의 손에서 죽기보다는 너희들의 손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내가 설령 성대한 장례는 치르지 못할지언정 길에서 죽기야 하겠느냐?"           



공자를 생각하는 자로의 지극한 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스승을 보살필 수 없는 상황의 자로는 자신의 후배들에게 공자를 부탁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인門人은 제자를 뜻하지만 자로를 감안하면 후배의 개념으로 보면 적당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공자가 자신의 제자들(이삼자二三子)과 신臣을 구분하고 있으니, 문인은 공자의 제자들은 아닌 것이지요. 


신臣은 가신家臣의 개념이어서 위신爲臣은 '가신 노릇을 하다'의 뜻이니 '집사처럼 잘 살펴드리다' 정도의 의미로 읽으면 됩니다. 


몸이 좀 나아져 정신이 든 공자는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차립니다. 행사行詐를 요즘 말로 하면 쇼(show)가 적당하겠지요. 벼슬하는 대부大夫도 아닌데 마치 그들의 가신들처럼 자로의 후배들이 집사 노릇을 하고 있으니 자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공자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병문안을 온 제자들에게 속내를 밝히고 있지요. "이것은 예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 친구들을 모두 보내도록 해라. 나는 괜찮다. 너희들도 생업에 종사하랴 공부하랴 바쁠 텐데 너무 신경 쓸 것 없다. 돌아들 가거라. 죽을 때가 되면 다 너희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겠느냐? 설마하니 내가 길바닥에서 객사라도 하겠느냐?", 공자의 말을 현대식으로 옮기면 이와같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케어 받는다고 해도 낯선 사람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며 삶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인연이 깊었던 이들과 생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겠지요. 요즘식으로 말하면 공자는 고급 요양병원보다는 살던 집에서 하던 일 하면서 담담히 남은 날을 정리하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장례식장에 근조화환이 장사진을 치기를 소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요. 이승에서 깊은 인연이 닿아 정겨운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따뜻한 작별을 나누는 편안한 죽음이야말로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들 모두에게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느닷없이 닥치는 데다가 애도의 기회조차 충분히 허락되지 않는 사회적 죽음이 반복되는 현실은 인간의 죽음을 더욱 덧없고 무참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다운 고귀한 삶의 영위와 인간다운 존엄한 삶의 마감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 잿빛 겨울은 성큼성큼 다가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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