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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Nov 17. 2022

일상의 논어 <자한子罕14>-각득기소各得其所


子曰 吾自衛反魯 然後 樂正 雅頌各得其所

자왈 오자위반노 연후 악정 아송 각득기소


-공자가 말했다. "내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후 음악이 바로잡혔다. 아송이 각기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되었다."



'아송'의 사전적 정의는 '<<시경詩經>>에 들어 있는 아雅와 송頌. 아는 정악이고 송은 조상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입니다. 즉, 아는 궁중 음악이요 송은 제례악인 것이지요. 아송이 제자리를 찾게 해주었다는 것은 곧 아송을 체계에 맞게 정리했다는 뜻이요 악정은 그것을 통해 음악의 체계를 확립했다는 의미이니, 이는 곧 시경 편찬에 대해 공자 스스로 자부심을 드러낸 대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태백> 편 8장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자왈 흥어시 입어례 성어락 - 공자가 말했다. "시에서 감흥하고, 예에서 정립하며, 음악에서 완성한다." 형식미의 관점에서 시와 예, 그리고 음악 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논한 바 있지요.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공자가 시경의 집대성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와 그 성과에 대해 뿌듯해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면 사람은 스스로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타인들에게 행복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일종의 사명감을 갖게 하지요. 나라를 부강하게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명감을 가진 리더라면 언행 하나 정책 하나하나에 그 심정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며, 세계 각국 정상들과의 교류에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상호 호혜와 균형의 가치를 포기한 외교로 국가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책임 회피와 침소봉대 밖에 없는 리더에게 사명감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리더의 무능은 탄핵 사유라고 일갈한 조국  장관의 말은 사명감 없이 자리와 자리를 탐해  우리의 무능한 리더에 대해 주권자인 우리의 책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무능한 리더의 반복적 선출은  국민의 무능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무능한 리더의 방치로 인한 폐해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라와 국민, 그리고 민족의 불행한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 이행 여부는  우리의 참담한 미래를 무기력하게 수용할 것이냐 단호히 거부하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 순리대로 흐르게  것이냐를 좌우하는 역사적 변곡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능한 리더의 망동을 도외시하기에는 이 나라와 이 땅에 뿌리박고 사는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삶이 너무도 중합니다. 아래 기사의 일독을 권합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373051?si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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