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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Dec 11. 2022

일상의 논어 <선진先進1>-오종선진吾從先進


子曰 先進於禮樂 野人也 後進於禮樂 君子也 如用之 則吾從先進

자왈 선진어예악 야인야 후진어예악 군자야 여용지즉오종선진


-공자가 말했다. "예악에 먼저 나아가는 것은 벼슬하지 않는 사람이요, 예악에 나중에 나아가는 것은 벼슬하는 사람이다. 선택하라면 나는 먼저 나아가기를 따르겠다."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뉘앙스로 해석됩니다. '옛사람의 예와 악은 야인적이고 요즘 사람의 예악은 군자적이다. 예악을 쓴다면 나는 옛사람을 따르겠다.' 선진을 선배(선학), 후진을 후배(후학)로 본 것이지요. 또한 야인을 야인과 같은 투박함, 군자를 군자와 같은 세련됨으로 읽는 것입니다.


여기에 <옹야> 편 16장의 내용을 연결하여 야인에서 질質의 속성을, 군자에서 문文의 속성을 뽑아내는데 이는 해당 내용에 비추어도 억지스럽습니다. 저는 위와 같이 풀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며 그 근거를 아래에 정리하겠습니다. (참고: https://brunch.co.kr/@ornard/958)     


일단 예악禮樂이라는 용어가 여기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예禮는 예법이요 악樂은 음악이지요. 예와 악의 일맥상통함을 우리는 <태백> 편 8장에서 상세히 알아본 바 있습니다. (참고: https://brunch.co.kr/@ornard/1015)


예와 악이 각각 따로 쓰인 적은 있어도 예악으로 함께 쓰인 것은 이 대목이 처음입니다. 이는 예와 악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이기에 따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익혀야만 하는 대상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태백> 편 8장의 내용을 기억한다면 시詩로 함양된 정서를 보유한 개인만이 타인을 예로 대할 수 있고, 예를 체화한 인간만이 악의 대동大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공자의 진의를 상기할 수 있습니다.    


즉 윗 구절에서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실상 이렇습니다. '진정한 인간 즉 인자仁者가 되기 위한 수양을 우선하는 것은 나나 나의 제자들과 같은 야인이다. 일단 출세에 필요한 자격으로서의 학문에만 집중하고 벼슬길에 오른 후에야 예약의 의의도 모른 채 그저 교양 수준의 그것을 습득하는 것이 너희 벼슬아치 아니더냐?' 국정을 농단하는 삼환 같은 불인한 자들을 비꼬는 용도로 '군자'를 사용한 것이지요.


이러한 추론이 타당하다는 것은 <팔일> 편 3장의 내용에서 확인됩니다.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공자 인이불인 여례하 인이불인 여락하 -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인하지 않다면 예가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인하지 않다면 악이 무슨 소용인가?"' 


"기본이 안 된 놈들이 뒤늦게 예악을 익힌 들 무엇하겠느냐? 너희들 같은 놈이 되느니 나는 야인으로 머물겠다"라는 공자의 결기를 우리는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기본도 안 된 놈들이 대다수 국민은 지배 대상으로 여기고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억압하면서 소수의 부자들과 기업들의 피해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퍼주면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현 시국에 잘 어울리는 공자의 일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만든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권리가 박탈 당해도 좋다고 지지하고 나라가 망해가도 신난다고 환호하는 어리석은 국민들은 정신병자나 다를 바 없습니다. 정신병자들에 촛점을 맞춘 정책들이 공정하고 상식적일 리 만무한 것이지요. 우리는 거치른 들판 같은 광장의 야인이 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논어도 우리는 '야인의 논어'를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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