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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Dec 16. 2022

일상의 논어 <선진先進11>-미지생언지사未知生焉知死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계로문사귀신 자왈 미능사인 언능사귀 왈 감문사 왈 미지생 언지사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을 제대로 섬기지도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계로가 물었다. "감히 죽음에 대해 여쭙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계로는 자로입니다. 용勇의 자로가 호기롭게 귀신과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공자의 대답은 간단하지요. 귀신이 아니라 사람에, 죽음이 아니라 삶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지침을 내린 것이지요.


이 유명한 구절을 통해 우리는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합니다. 즉, 공자가 현실을 벗어난 영적 세계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증거로 삼아 <<주역>>이라는 경經에 대한 전傳인 '십익十翼'이 공자의 저작이 아니며 따라서 위편삼절韋編三絕 역시 주역에 대한 표현이기 어렵다고 보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지요.  


바로 직전만 해도 우리는 공자가 안회의 죽음을 맞아 하늘이 자신을 버렸다고 통탄한 대목과 만난 바 있습니다. 공자는 국가와 개인의 제사를 중요시했지요. 그것을 단순히 예법을 통한 공동체의 결속력 강화 차원에 국한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동양적 '하늘'에 대한 공자의 인식과 그에 대한 경외는 논어 곳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어설프게 아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학문적 탐구와 성찰을 통해 깊은 앎을 획득하는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불인不仁한 인간들의 요설을 듣는 것에 만족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실체가 불분명한 교리에 세뇌되고 맙니다. 인간의 심리는 불안정하지요. 많은 심리학 실험들은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쉽게 조종될 수 있는 것인지 증명합니다. 독재자들과 사이비 교주들은 인간 심리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악하게 사용했을 뿐이지요.   


동시에 맹신도 위험합니다. 그 대상이 과학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탁월한 리더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과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고 위대한 리더라고 평가 받는 사람이라도 무오류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요. 현대 국가의 제도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권력의 분산과 권력 주체별 상호 감시와 견제를 헌법적 원리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권력자가 교묘하게 법을 비틀어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타 권력 주체들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모든 시도는 반헌법적이며 그 자체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불인정 받아 마땅한 근거가 됩니다.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일들이 법이라는 위장막 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들이 정의의 가면을 쓴 채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지요. 민주주의는 질식되고 있고 몰락하는 경제 하에서 국민의 삶은 위협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상 대신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상은 다시 한 번 좌절되었습니다. 반헌법적, 반민주적 패도 세력을 몰아내지 않고는 이 땅에 희망을 일굴 수 없습니다. 


주역은 말합니다. 지금은 불통과 폐색의 천지비괘天地否卦의 시절이라고. 하늘과 땅을 뒤집어 암울한 세상을 끝장내고 다시 국민이 행복한 지천태괘地天泰卦의 세상을 열라고.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책임과 고독이 뒤따른다'는 에리히 프롬의 통찰은 여전히 날카롭게 이 시대의 그림자에 숨은 진실을 후벼팝니다. 자유에 동반되는 고통과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의존과 종속에서 안정감을 찾기로 한 독일 국민이 나치즘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만의 세상이 되어 갈수록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국민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무너진 나라의 노예로 살아가는 삶에 어떤 인간적 행복감이 깃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노예 근성을 버리고 고난을 감수하는 자유인으로서의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틈만 나면 자유민주주의를 떠들어대는 자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를 약탈 당하고 나면 우리에게는 그 어떤 도피처도 남지 않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국민이 주인되는 새 '하늘'을 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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