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Dec 20. 2022

일상의 논어 <선진先進14>-승당입실升堂入室

子曰 由之瑟 奚爲於丘之門 門人不敬子路 子曰 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

자왈 유지슬 해위어구지문 문인불경자로 자왈 유야승당의 미입어실야 


-공자가 말했다. "유의 거문고가 어찌하여 내 집안에서 연주되는고?" 제자들이 자로를 깍듯하게 대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유는 대청에는 올랐다. 아직 방 안에 들어오지 못한 것뿐."    



일상의 논어 <술이> 편 18장 해설(https://brunch.co.kr/@ornard/988)을 읽은 분이라면 공자가 자로를 대할 때는 유머를 구사하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를 모르고 위 구절을 읽으면 풀이에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공자의 집에 제자들이 놀러온 모양입니다. 아니면 공자가 출타 중일 때 제자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겠지요. 공자의 귀에 자로의 거문고 소리가 들려옵니다. 공자는 소리만으로도 자로의 연주임을 알아챕니다. 위의 해석에서는 직역의 맛을 지우지 않았지만 공자의 말은 "자로의 거문고 소리가 어찌 내 집에서 들리는고?" 정도로 풀이하는 것이 적당하지요. '이거 소리가 둔탁한 것이 딱 들어도 자로 녀석이 거문고 갖고 노는구나', 공자는 이리 생각했을 테지요.


스승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이 어리석게도 다음과 같이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 스승님이 저리 말씀하시는 것 보니 자로 사형 거문고 실력이 형편 없는 모양이군. 폼만 번지르르 하더니 별 거 아니었구만!' 


자로를 대하는 다른 제자들의 태도를 보고 공자는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쥐뿔도 모르는 녀석들아. 너희들은 아직 마당에서 헤매는 주제에 대청마루까지는 올라온 자로를 무시하느냐?"의 뉘앙스로 꾸짖지요.  


'승당입실'은 '마루에 올랐다가 방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니 어떤 일의 순서나 차례를 말합니다. 학문의 단계를 비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굳이 학문으로 연결 시킬 필요가 없지요. 거문고 연주에 국한해야 합니다. 악樂은 그 자체로 중요한 배움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이해력이 부족하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과 말과 글을 섞는 일만큼 공허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공자의 덜떨어진 제자들 못지 않은 띨띨한 자들이 권력을 잡고 뚤린 입을 함부로 놀리는 판타스틱한 시대에 살고 있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논어 <선진先進13>-잉구관仍舊貫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