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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Dec 27. 2022

일상의 논어 <선진先進21>-진퇴進退

子路問 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冉有問 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公西華曰 由也問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求也問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赤也惑 敢問 子曰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자로문 문사행저 자왈 유부형재 여지하기문사행지 염유문 문사행저 자왈 문사행지 

공서화왈 유아문문사행저 자왈부형재 구야문문사행저 자왈사행지 적야혹 감문 자왈 구야퇴 고진지 유야겸인 고퇴지


-자로가 물었다. "들으면 곧 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부형이 계시는데 어찌 듣는다고 곧 행한다는 말이냐?" 염유가 물었다. "들으면 곧 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들으면 곧바로 행하거라."   

공서화가 말했다. "유가 들으면 곧 행해야 하냐고 여쭸을 때는 부형이 계신다고 하시더니, 구가 들으면 곧 행해야 하냐고 여쭸을 때는 들으면 곧바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의아하여 감히 여쭙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구는 물러나니 나아가게 한 것이고, 유는 혼자서 여럿을 당해 낼 정도이니 물러서게 한 것이다."  



널리 알려진 유명한 구절입니다. 배우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가르침을 전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간단한 것 같아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이해하려는 열정과 이해한 바를 학생들 개개인에게 적용하려는 애정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로는 실천에 대한 강박이 있었습니다. <공야장> 편 13장에서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지요. '子路 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 유문 미지능행 유공유문 - 자로는 가르침을 들은 후 미처 행하지 못했을 때면 새로운 가르침 듣기를 두려워했다.' '겸인'은 직역하면 '다른 사람을 아우르다'는 뜻이니 마치 여러 사람을 합해 놓은 것처럼 지나치게 적극적인 기질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염유는 결국 돈과 권력을 좇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한 자답게 <옹야> 편 10장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바가 있습니다.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畵 염구왈 비불열자지도 역부족야 자왈 역부족자 중도이폐 금여획 - 염구가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능력이 부족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능력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선을 긋는 것이다."' '역부족'을 운운하고 있지만 실상은 학문의 길에서 멀어지고 싶어 하는 심리가 투사된 말이지요. 공자는 염유가 학문에 소극적인 이유를 알고 있기에 배운 것을 바로바로 실천하게 함으로써 배움과 실천 과정에서 얻는 기쁨을 통해 부질없는 것에 대한 희구를 멈출 수 있기를 바란 것입니다.    


맞춤형 교수법이 늘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염유는 결국 계씨 집안의 가신으로 들어가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굴면서까지 자신의 고용주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니까요. 공자는 그런 염유를 결국 파문했지요. 


배움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것보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백 번 낫습니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깨닫기 위해 애쓰는 제자에게는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기 마련이지요. 원래 공부란 늘 어렵고 하기 싫은 것입니다. 먹고 살기 바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핑계로 공부에서 멀어지면 결과는 뻔합니다. 점점 아둔해질 뿐이지요. 그렇게 된 자들의 사고는 점점 반지성적으로 흘러 결국 부도덕한 일들을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어느 자리에 있건 그런 자들은 퇴진退陣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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