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하고 또 시도하라.
九四 或躍在淵 无咎
구사 혹약재연 무구
-혹 뛰어올랐다가 연못으로 돌아오게 되어도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구사는 구삼과 같은 사람의 자리이나 실위失位하였고 외괘의 시작이니 가만 있지 못하고 도약을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내괘는 안으로 들어가고 외괘는 밖으로 나가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실력을 갈고 닦았고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들 한 번의 시도에 자신의 능력을 완벽히 발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시험이든, 취업이든, 사업이든 말입니다. 그래서 기록으로 승자를 가리는 스포츠 종목들이 보통 두세 차례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채용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니 한 번에 늘어진 엿가락처럼 쩍 하고 붙는 사람보다 미역국을 먹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 떨어졌다고 흉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연못 위로 뛰어올랐다가 공중으로 날지 못하고 다시 연못으로 돌아오는 용처럼 되어도 상관없는 것입니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재도전 준비를 하면 됩니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라고 노래하면서 말입니다.
따라서 합격을 확신하기 어려워도 때가 되면 시도하는 것이 인간의 자세여야 합니다. 인간사에 완벽한 확신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늘 두려움이 앞서고 회의懷疑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뛰어오르면서도(躍) '혹시나(或)' 하는 것이지요. 그 두려움과 회의가 인간으로 하여금 대비하게 만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구사가 동하면 외괘가 손괘가 됩니다. <설괘전> 7장에 '손입야巽入也'라고 했습니다. 손괘에는 '안으로 들어가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구사가 동한 상태에서 내호괘가 태괘가 됩니다. <설괘전> 11장에 '태위택兌爲澤'이라고 하였습니다. 태괘는 연못의 상입니다. 대성괘의 6효 중 2, 3, 4효로 구성된 소성괘를 내괘로 하고, 3, 4, 5효로 구성된 소성괘를 외괘로 하여 만들어지는 괘를 호괘互卦라고 합니다. 호괘의 내괘와 외괘를 각각 내호괘와 외호괘로 부릅니다. 손괘와 태괘에서 연못 안으로 들어가는 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효의 변화로 인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괘와 괘의 관계 속에서 그야말로 입체적인 의미들이 도출됩니다. 주역을 공부하면서 이 재미에 빠지다 보면 서서히 주역의 마력에 심취하게 됩니다. 술이나 담배, 쾌락에 탐닉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이치에 눈을 뜨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저절로 수양이 됩니다.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고 하늘의 뜻에 반하는 내용으로 점치는 것을 주역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재앙을 부르는 행위와 같지요. 내용과 형식면에서 모두, 주역은 겸손하게 나아갈 것, 크게 하나가 될 것(大同)을 자연스레 요청합니다. 공부하면서 우리는 그 요청에 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구사가 동해 만들어지는 지괘는 9괘 풍천소축괘입니다. 풍천소축괘를 읽으면 중천건괘 구사와의 정교한 연관성을 알게 됩니다.
연못에서의 도약은 단 한 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열 번일 수도 있고 백 번일 수도 있지요. 계속되는 좌절 앞에서 '아직 나의 때가 아니구나, 더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그래서 멘탈 역시 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비가 내리는 법입니다. 모든 기우제가 100% 성공했던 이유입니다. '인생 전체의 성공'을 늘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여러 시련과 좌절들 앞에서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끔은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은 심리에 사로잡힐 지라도 다시 본래의 자기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수록 자신으로의 복귀가 늦어집니다. 타인의 시선에 그럴듯하게 비칠 만한 인생을 사는 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타인으로 하여금 자기 인생의 평가를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또한 어떤 선택 앞에서든 타인의 존재를 핑계 삼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불행한 상태에 있는 타인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맘껏 누리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결국 자신의 삶에 불행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불행은 불행을, 행복은 행복을 닮아 갑니다.
중천건괘 구사효에서 우리는 '인생 전체에 있어서의 도약'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 지금의 길이 내 길이 아닌 것은 아닌지, 혹 지금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연못 밖으로 솟구쳐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시도들이 아니면 우리 몸에 보이지 않는 날개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영원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