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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Mar 01. 2023

일상의 논어 <자로子路27>-강의목눌剛毅木訥


子曰 剛毅木訥 近仁

자왈 강의목눌 근인


-공자가 말했다. "강직하고 의연하여 꾸밈없이 무겁게 말할 때 인에 가까워진다."



강, 의, 목, 눌을 각각 따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의와 목눌로 묶어서 봐야 합니다. 그 까닭에 대해 <학이> 편 3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

-공자가 말했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낯빛을 꾸미는 사람 중에 인한 이는 드물다."


'강의'는 '영색'과 '목눌'은 '교언'과 각각 대비됩니다. 


낯빛을 꾸미는 것은 의도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계산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고 의지가 굳센 사람은 도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강의'란 올곧은 품성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런 품성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목눌'할 때 인의 경지에 다가설 수 있다고 공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목木은 그 자체로 인仁을 상징합니다. 오행 목금화수토는 오상五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각각 대응하지요. 인의 성정을 가진 나무는 말이 없습니다. 눌이라는 글자와 잘 어울리지요. 눌에서 눌변을 연상하기 보다 눌이 목과 함께 쓰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말수의 적음' 곧 '꼭 해야 할 말만을 무겁게 말함'을 읽어 내야 합니다.   


작금의 언론과 정치 권력은 국민을 기만하여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서라면 말이 되든 말든 아무 말이나 끌어다 붙이면서 그럴싸하게 포장합니다. 인仁과 가장 거리가 먼 자들의 꾸밈과 속임에 넘어가는 것은 내면이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대폭발 시대에 인간의 사유 능력은 퇴보할 것이고, 자기 성찰의 태도는 퇴색할 것입니다. 성실한 노력보다 교묘한 활용력이 성과를 낳는 실력으로 대접 받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대교언영색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해 현실이 왜곡될수록 인간에 대한 AI의 인식 역시 곡해될 가능성이 높지요. 


이 시대 우리나라의 모습은 AI에게 잘못된 학습을 시킬 확률이 큽니다. 인간 사회의 본질이란 결국 가식, 가장, 위장에 능숙한 자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는 체제에 불과하다는 오해를 갖게 된 AI라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거짓된 소통을 수단으로 삼게 되겠지요. 우리 사회의 붕괴와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 줘야 하지요. 앞으로의 우리의 정치적 선택 하나 하나가 곧 인류의 운명과 직결된다는 분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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