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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11. 2023

일상의 논어 <헌문憲問36>-이직보원以直報怨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혹왈 이덕보원 하여 자왈 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덕


-어떤 사람이 물었다.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럼 덕은 무엇으로 갚겠소? 원한은 직으로 갚고, 덕은 덕으로 갚는 것이오."



'원수를 사랑하라', 공자는 이런 관점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든 정치든, 현실 세계에서는 은원이 교차합니다. 공자는 말합니다. 은혜는 반드시 덕으로 갚고, 원한은 직으로 갚으라고 말입니다. 


직直은 '곧음, 바름'이니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지요.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여 임금을 능멸하는 대부들, 백성들의 고혈을 짜 축재에 여념 없는 그들을 보며 공자는 직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결코 덕으로 감화시킬 수 없는 자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다면 공자는 개인의 원한에 대한 사적 복수까지도 용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직에 대한 개인의 해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심직행信心直行이라는 말대로 각자 옳다고 믿는 바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인간의 제도는 불완전하여 악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합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처럼 공정은 언제든 왜곡될 수 있는 가치입니다.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해 보답하기는커녕 등에 칼을 꽂는 배신자를 용서하고 덕으로 포용하는 일은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사람들이 <모범시민>이나 <더 글로리> 같은 영화와 드라마에 열광하는 까닭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과 피해자의 분노에 대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뼈에 새겨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은혜를 입을 일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작은 원한들은 물에 씻어서 떠내려 보내야 합니다. 안 보고 살면 그만입니다. 대신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원한은 심장에 새겨야 합니다. 살아 있는 한 잊어서는 안 되지요. 꼭 되갚아 줘야 합니다. 우리 정치 현대사의 비극과 이 무도한 현실의 모습이 반성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관용 탓이듯, 어설픈 용서는 또 다른 참극의 씨앗이 될 뿐입니다. 


법정 스님은 책 <<무소유>>에서 '모든 오해는 이해 이전의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비판은 올바른 인식을 통해서만 내려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몰인식한 자들에게는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들에 대한 합리적 비판은 힘으로 누르거나 궤변으로 회피하면서 타인들에게는 없는 티끌도 만들어 공격하는 자들이 살아 생전에 변할 가능성은 단어 그대로 제로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일상에서 가능한 한 타인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세상은 내가 보듬어야 할 대상으로 넘치기 때문이고, 좋은 사람은 타인들로부터 경험한 배은망덕을 새로운 타인에게 옮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소유>>의 한 대목으로 마무리합니다.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 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 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 주는 것이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을 들어 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었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버리고 안 계신 한 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노사의 상이다. 


산에서 살아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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