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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12. 2023

일상의 논어 <헌문憲問37>-하학상달下學上達

子曰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

자왈 막아지야부 자공왈 하위기막지자야 자왈 불원천 불우인 하학이상달 지아자 기천호 


-공자가 말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자공이 말했다. "어찌 스승님을 몰라주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하늘을 원망하지도 사람들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하학하여 상달했으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저 하늘 뿐이로구다."



우리는 <헌문> 편 24장에서 '상달'의 개념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아야 군자(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고 했던 공자가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어찌 된 영문일까요?


'하학이상달'에 공자의 속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학'은 '아래를 공부하다'는 뜻입니다. 아래는 땅이지요. 곧 아래는 땅의 일인 인간사이자 인간의 학문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시, 예,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태백> 편 8장에서 '시에서 감흥하고, 예에서 정립하며, 음악에서 완성한다(흥어시 입어례 성어락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고 했으니까요. 물론 굳이 이렇게 압축할 필요가 없는 광의의 학문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상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인의 경지를 추구했고 <<주역>> 공부를 통해 천명을 이해하였습니다. 사는 동안 땅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해도 담담히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의 인식을 뛰어넘는 깨달음에 도달한 인간의 인생이란 후대를 겨냥하는 법입니다. 혼자 힘으로 자기 시대의 한계를 초월할 수 없다고 해도 결국 모든 시대가 봉착하기 마련인 문제 해결에 대한 통찰을 남기게 되지요. 


어쩌면 그것이 비범한 인간에게 특별한 운명을 부여한 하늘의 진정한 뜻인지도 모릅니다. 물리적 죽음으로 종료되지 않는 영원한 삶 말입니다. 자신의 뜻에 순응한 한 인간의 용전분투한 삶을 하늘이 몰라줄 리 없겠지요. 


한정된 자원과 이익을 더 갖기 위하여,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지구상의 강대국들이 벌이는 탐욕의 각축전은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한계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소위 이익 지상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는 개인과 개인 역시 경쟁의 장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릴 명분이 없습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 정부를 도청하는 짓을 마다하지 않는 미국이나 이웃 나라의 영토를 자기 것이라고 우겨 대고 방사능 오염수를 안전하다고 떠들어 대는 일본이나, 각 개인으로 하여금 이利를 위해 의義를 버리라고 온몸으로 강변하는 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가 구축한 국가 시스템이 인간성 말살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 정부는 그것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오만하라, 진실에 대한 요구는 무조건 묵살하라, 저항하는 세력은 힘으로 제압하라... 정부가 자각할 리 없지만 그것은 날마다 이와 다름없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지요. 


'상달'하여 죽어서도 불멸의 삶을 사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겨우 한 생을 살면서 반성과 성찰 없이 악행을 일삼는 자들도 있습니다. 인류가 만든 시스템은 후자형 인간들의 양산을 근절할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한 것이지요.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이 지적했듯 '이미 자궁에서 시작되는 인간의 불평등'을 해소할 시스템이 자궁 밖에서 만들어질 날은 요원합니다. 인간의 유산을 학습한 AI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럴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쯤은 인간인 우리에게 어려운 통찰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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