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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14. 2023

일상의 논어 <헌문憲問39~40>-현자피세賢者辟世

39장과 40장은 함께 정리합니다.



子曰 賢者辟世 其次辟地 其次辟色 其次辟言

자왈 현자피세 기차피지 기차피색 기차피언


-공자가 말했다. "현자는 (무도한) 세상을 피한다. 그 다음 가는 사람은 (어지러운) 지역을 피하고, 그 다음 가는 사람은 (꾸미는) 낯빛을 피하며, 그 다음 가는 사람은 (교묘한) 말을 피한다. 



뒤부터 보면 내용이 보다 간명하게 드러납니다. 말 >> 색 >> 지역 >> 세상의 순서로 보자는 것이지요.


언言과 색色은 교언영색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교묘한 말이 판친다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언은 이미 실종된 상황입니다. 권력자의 눈치만 보며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혀와 붓을 간사하게 놀리는 것이지요. 


얼굴빛을 꾸미는 것은 여기에 한술 더 뜨는 것입니다. 표정과 태도까지 아첨과 아부의 기색으로 채우려면 마음 작용까지 철저히 비굴해져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완전히 상실할 때 보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들리는 말과 보이는 글로 판단하여 곧장 피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입니다. 더러운 꼴 보기 싫으니 외면해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낯빛까지는 확인하는 것은 그래도 그릇된 말과 글을 견뎌 보는 것입니다. 말과 글로 맞서 보는 것이지요. 그러다 모조리 간신들로 가득해진 지경에 이르면 말과 글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피하는 것입니다. 


지역은 요즘의 시각으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공자의 입장에서는 춘추시대의 제후국들을 얘기한 것이겠지요. 장소를 피하는 것은 목적도 없이 표류하는 권력 다툼의 아수라장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불의하고 탐욕스러운 자들로 들끓는 아귀다툼의 현장에서 희망을 완전히 내려놓고 물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을 피한다는 것은 절망으로 가득한 무도한 속세를 마침내 등지고 은둔하는 것입니다. 소인들이 득세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어그러진 세상에서 녹을 먹는 것의 수치스러움과 허망함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초야에 묻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입장이 다릅니다. 피할 데가 없습니다. 간신들은 권력자에게 교언영색하고 권력자는 강대국에 굴종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기 싫다고 나라를 버릴 수는 없지요. 주인이 나라를 포기하면 나라는 없어지고 맙니다. 나라가 없어지면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역사가 생생히 증명하지요. 주인일 때 주인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子曰 作者七人矣

자왈 작자칠인의


-공자가 말했다.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일곱 있었다."



'피세'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공자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네요.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당대의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 속의 은자들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위진 남북조 시대의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현자들은 언제나 자연 속에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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