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Apr 21. 2023

일상의 논어 <헌문憲問46>-시위적是爲賊


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

원양이사 자왈 유이불손제 장이무술언 노이불사 시위적 이장고기경


-원양이 걸터앉아 기다리고 있을 때 공자가 말했다. "어려서는 공손하지 않고, 자라서는 내세울 것이 없고,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도둑이 되었구나."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툭 쳤다. 



원양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래된 친구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 아내가 세상을 떴을 때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했던 장자가 연상되지요. 도가의 탈속적 사상을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잘못 해석하면 내용이 산으로 가기 쉽습니다. 공자가 친구를 비하하면서 도둑놈으로 몰기까지 하고 끝내 지팡이로 정강이를 때리니까요. 하지만 허물없는 두 친구가 나이 들어 만나는 것임을 생각하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정겨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해후하기로 했나 봅니다. 아마도 원양이 공자에게 기별을 넣었을 것입니다. 원양이 어디에 있는지 공자는 알지 못했을 테니까요. 전갈을 받은 공자가 약속 장소로 나가 보니 젊은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영락없는 늙은이 하나가 앉아 있습니다. 지팡이를 들어 다리를 툭 건드리며 공자는 농을 칩니다. '허허. 어릴 때 드럽게 말 안 듣더니, 커서도 이렇다 할 건덕지도 없이 늙기만 바삐 늙었구나. 늙으면 얼른얼른 죽을 생각은 안 하고 여기는 뭐하러 온 게냐, 이 도둑놈아!' 이런 뉘앙스를 우리는 읽어야 하지요. 


무위도식한 친구의 정강이를 때리며 꾸짖는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도둑이란 '시간 도둑', '세월 도둑'의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을 훔쳐다 어디에 감춰 두고 이렇게 다 늙어서 나타난 것이냐고 공자는 늙은 오랜 친구와 다시 만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기쁨과 인생의 무상함이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곤 원양도 한마디 했겠지요. '예끼, 이 놈. 젊은 놈이 어른을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작대기로 사람을 패네. 예를 안다는 천하의 공자가 늙은이를 팬다! 허허 이 놈. 깽값 물어 주려면 술깨나 사야 할 것이다, 이 눔아!'


물론 쩍벌 굥선생이 앉아 있었다면 공자가 지팡이에 힘을 줘서 머리통을 내리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공자와 원양 두 벗은 진한 포옹 후에 대낮부터 대작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논어 <헌문憲問45>-수기脩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