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
자왈 궁자후이박책어인 즉원원의
-공자가 말했다. "자신에 대해서는 두텁게, 남에게는 얇게 꾸짖으면 원망을 멀리할 수 있다."
머지 않아 만나게 될 <위령공> 편 20장의 내용(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 군자는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타인에게서 찾는다)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허물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남의 그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라는 얘기이지요.
사람 그릇의 성장은 결국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고 자신의 옹졸함을 반성하는 사람의 그릇만이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갖습니다.
대통령이든 법무부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백 살 넘게 살아온 철학자이든, 사회적 호칭은 그 사람의 그릇 크기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언행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는 기껏해야 스스로에게 관대한 나르시스트에 불과할 뿐이지요. 완벽한 자신으로 꽉 채워진 나르시스트의 가슴속은 타인들을 위해 확장될 수 없습니다. 그 안에서 자라는 것은 오직 자기애뿐이니까요.
국민의 원성이 날로 커지는 데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뻘짓을 지속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