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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n 24. 2023

일상의 논어 <양화陽貨10>-정장면正牆面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

자위백어왈 여위주남소남의호 인이불위주남소남 기유정장면이립야여 


-공자가 백어에게 말했다.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였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담장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공자는 아들 백어에게도 시 공부를 강조했습니다. 이 구절은 <<시경>>에서도 주남과 소남을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주남과 소남은 <<시경>>의 처음인 '국풍(國風)'의 맨 앞에 등장하는 편으로 총 25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로 남녀와 부부 간의 연정을 노래합니다. 공자는 왜 이런 소재의 시들을 읽지 않으면 담벼락 앞에 서 있는 셈이라고 말했을까요?


이성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 사랑의 기쁨과 별리의 아픔, 그리움과 미움이 혼재된 복합적 감정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거치는 삶의 과정이자 인류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생활 양식이지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요, 인간을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그들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겠지요.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 있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의 기본적 정서에 대한 공감 없이 한 걸음의 정신적 진보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른다는 헛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사람의 정신 수준이 어떠한지, 그런 사람에게 열광하는 자들의 정신이 얼마나 황폐한 상태인지 짐작하는 것이 쉬운 일일 수밖에 없는 근거이지요. 


핵심은 이것입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른다고 당당하게 입을 놀릴 수 있는 까닭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은 분노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말로 내뱉어도 옹호하는 우중(愚衆)과 언론이 이런 생각들로 뇌가 가득 찬 사람의 역사적 반동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거대한 벽에 부딪쳐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산책하다가

지팡이로 버섯 하나를 가리킵니다.


"얘야 이것은 독버섯이야!"


독버섯으로 지목된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쓰러진 그를 부축하며 친구가 위로합니다.

비바람 불던 날 그가 보여준 따뜻한 우정을 이야기했지만

쓰러진 버섯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친구가 최후의 한마디 말을 건넵니다.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버섯인 우리들이 왜 ‘식탁의 논리’로

우리를 평가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자유(自由)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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