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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l 01. 2023

일상의 논어 <양화陽貨19>-천하언재天何言哉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자왈 여욕무언 자공왈 자여불언 즉소자하술언 자왈 천하언재 사시행언 백물생언 천하언재 


-공자가 말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구나." 자공이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이 무엇을 전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하늘이 뭐라 말하더냐? 사계절을 운행하여 만물을 기르면서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자욕무언'을 말하지 않겠다는 공자의 선언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색합니다. 공자가 말로 가르치기를 멈추고 묵언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으니까요. 


그저 어느 날, 평소와 다름 없이 함께 공부하다가 문득 공자는 말의 덧없음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마다의 생각을 피력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제자들의 시선에서 뭔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언변이 뛰어났던 자공은 갑작스레 말을 아끼려는 공자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교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떠올리면 공자의 마음을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공자는 지금 깨달음이란 반드시 언어적 가르침에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늘의 이치는 땅에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구현됩니다. 그것은 순환과 지속이지요. 끝에서 다시 시작하고, 죽음에서 다시 삶이 이어지는 종시(終始)의 이치입니다. 


하늘이 품고 있는 진리에 비하면 인간의 언어로 모아지고 전해지는 것은 티끌에 불과합니다. 언어라는 고정된 틀 안에 갇힌 텍스트는 부지불식간에 인간을 고정 관념의 벽에 갇히게 만들지요. 언어가 가진 태생적 한계가 인간의 사유에도 한계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유란 영원히 진리 이전의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언어의 한계에서 자유로워질 때 인간의 사유는 진리에 근접할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공자는 주역적 세계관을 깨우쳤지요. 위 구절은 그것이 사실임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지식은 죽은 것이요, 오직 지혜만이 생생히 살아 있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대상임을 알려 줍니다.


마치 그것이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라도 되는양 과학을 내세워 후쿠시마 핵폐수의 위험성을 감추며 일본의 입장을 옹호하는 학자들이나 먹고 마시는 쇼에 여념 없는 정치인들은 인간의 언어가 사유하는 인간을 길러 내는데 얼마나 취약한 장치인지 선명하게 증거합니다. 


인간의 과학은 우주의 먼지 한 톨 수준도 안 됩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과학을 내세우는 자들은 사적 이익만을 중시하는 위선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일본은 단순히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핵폐수 바다 방류를 선택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액수 수준으로 합리적 관리가 가능하다면 일본이 저 정도로 무리수를 던질 이유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핵폐수가 땅속으로 흘러들며 일본 전역으로 이어진 지하수원과 물줄기를 오염시킬 위험성이 대두되었고, 그것은 시멘트를 부어 고체화하는 방식 따위를 적용할 시점을 넘어섰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말해야 할 자들이 말하지 않는 이상 누가 알겠습니까? 핵폐수 바다 방류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재앙임이 분명한데 반해, 그것에 찬성하는 무리들의 말은 어떤 설득력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논리가 부족한 자들이 억지로 이기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은 늘 무력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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