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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ul 14. 2023

일상의 논어 <미자微子7>-살계위서殺雞爲黍

子路從而後 遇丈人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子路拱而立 止子路宿 殺雞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 

明日 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 使子路反見之 至則行矣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絜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자로종이후 우장인이장하조 자로문왈 자견부자호 장인왈 사체불근 오곡불분 숙위부자 식기장이운 자로공이립 지자로숙 살계위서이식지 현기이자언 

명일 자로행이고 자왈 은자야 사자로반현지 지즉행의 자로왈 불사무의 장유지절 불가폐야 군신지의 여지하기폐지 욕결기신이란대륜 군자지사야 행기의야 도지불행 이지지의


-자로가 심부름 갔다가 뒤쳐졌을 때 지팡이로 삼태기를 메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자로가 물었다. "어르신, 스승님을 보셨는지요?" 노인이 말했다. "사지를 움직이지 않고 오곡도 분간하지 못하는데 누가 스승이란 말인가?" 지팡이를 꽂아 두고는 김을 맸다. 자로가 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고 서 있었다. 

자로를 만류하여 묵게 하고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이고는 두 아들을 소개했다.  

다음날, 자로가 가서 고하자 공자가 말했다. "은자로구나." 자로를 시켜 되돌아가 뵙게 했으나 자로가 도착했을 때는 출타 중이었다. 자로가 말했다. "출사하지 않으면 의가 없는 것이네. 장유의 예절도 버릴 수 없을진대 군신의 의를 어찌 저버릴 수 있겠는가? 자기 몸을 깨끗이 하겠다고 큰 도리를 어지럽히는 셈이야. 군자가 출사하는 것은 의를 행하기 위해서일세. 도가 행해지지 않음은 익히 아는 일이지."             



은자와의 일화가 계속됩니다.


문맥상 첫 문장에서 종(從)은 '심부름하다'의 뜻으로는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따르다, 모시다, 시중들다와 같은 의미로는 공자와 떨어지게 된 사유를 설명하지 못하니까요. 


은자는 공자에 대해 '몸을 움직여 노동하지 않고 그로 인해 농작물 보는 눈도 없는 사람'이라고 일갈합니다. 이상에 치우쳐 백성의 삶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은자의 마음에 은근한 동요가 일어납니다. 자로의 예의 바른 태도가 그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가 강조하는 예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구나. 공자가 잘 가르쳤구나', 은자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날이 어두워진 듯, 은자는 자로를 집으로 데려가 잘 먹이며 대접해 줍니다. 자로의 예의에 그의 마음은 부들부들 풀어져 있었던 것이지요. 자식들까지 인사를 시킵니다. 


자로의 말을 들은 공자는 노인에게 말을 전하고자 자로를 다시 보냅니다. '지즉행의'에서 행(行)을 은자와 두 아들이 떠난 것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자로의 말을 통해 우리는 은자가 출타 중이었고, 자로가 두 아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확장하면, 은자가 일부러 자리를 비켜 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초야에 묻힌 자신을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의 바르게 대한 자로를 보며 은자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이 있는 한 어쩌면 공자의 이상이 실현될지도 모르겠구나. 공자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제자들의 시대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구나. 세상을 등진 나야 이대로 늙어 흙으로 돌아가면 그 뿐이리라. 하지만 앞날이 창창한 두 아이에겐 가혹한 일 아니겠는가? 공 선생, 내 그대에게 기대를 걸어 보겠소.' 은자는 자로가 다시 올 것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자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자로는 은자의 두 자식을 설득하는데 성공했을까요? 두 아들은 아버지에게 공자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길을 떠났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장에서 타인을 인정하며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을 줄 아는 은자의 마음 그릇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식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삶을 생각하는 나이 든 자의 따뜻한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은자의 아들들이 자로를 따라 길을 떠났기를 바랍니다. 은자는 외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눈으로 희망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 외로운 순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 세대의 희망을 죽이고 절망만을 선사하는 이 정신 나간 정부의 미친 놈들에게 은자라면 이렇게 한마디 했을 것입니다.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일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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