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2. 이페

by 오종호

‘숲에는 아침 안개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숲 가장 높은 나무 위에 자리한 까치집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 뒤에 갇혀 있는 해가 얼굴을 내밀고 나서야 숲은 제 빛깔을 찾을 것이었다.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파고들자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글자들이

나비처럼 일제히 날아올라 나뭇잎이 되었다.

다시 나뭇잎들은 춤추듯 나무를 박차고 일어나

새들로 변하여 숲 위로 날아갔다.’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보니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페(Ife)는 졸린 눈을 모니터에서 잠시 떼고 눈을 감았다. 졸음을 참은 눈알이 모래에 긁히는 듯 아렸다. 의자를 뒤로 크게 젖히고 누웠다. 온몸에 기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이페는 생각했다.


“휴우.”


이페는 눈을 감은 채 두 팔을 귀 뒤에 바싹 붙이고 기지개를 켜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글은 쉽게 써지지 않았다. 상상력이 고갈된 탓일까?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글은 다시 스스로 길을 찾아내어 앞으로 나아갔었다.  


아이디어가 증발되거나 체력적으로 무너지면 창작의 고통은 배가 되었다. 마감 시한에 쫓길 때면 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이페에게 글을 쓰는 것 외에 달리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정하지 않았지만 유일한 수입원이었고 굳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일이어서 이페는 글을 쓰는 일이 좋았다.


이페는 눈을 번쩍 뜨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규칙적으로 한 번에 딱 한 걸음씩만 나아가는 벽시계의 초침을 바라보았다.  


‘삶이란 시계 바늘과 같았다.

어떻게든 몸을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삶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는 것.

‘인생은 허무하다’는 진리를 알게 되면 인생의 초침은 느려진다.

걸음의 속도를 올리는 일을 멈추는 대신

걸음과 걸음 사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난 이페는 자판을 두드려 문장을 더하고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이페는 남들이 무엇을 하며 사는 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법한 모습을 상상하며 문장에 문장을 이어 세상에 있을 법한 사랑 이야기들을 짓는 것이 이페의 일이었다. 초침은 새벽 3시 10분 10초를 막 지나가고 있었다. 침대 한쪽에 이불이 아무렇게나 뭉쳐져 있었다.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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