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각종 조리 기구들, 야채들, 고기들, 양념통들이 식탁을 빼곡히 채운 채 아무렇게나 늘어서 있었다. 로니카(Ronika)는 요리를 하는 도중 잠깐씩 멈추어 사진 촬영을 했다. 오늘의 요리는 ‘까르보나라와 한우 등심의 앙상블’ 이었다.
-프라이팬에 물을 붓고 작은 티 스푼으로 한 스푼 분량의 소금을 넣은 다음 끓여 주세요.
-물이 끓으면 스파게티 면을 프라이팬에 빙 돌려 가며 풀어 주세요.
-중불에 8분 정도 보글보글 끓이신 다음 넓은 접시에 스파게티 면을 따로 건져내어 올리브 오일을 뿌려 살짝 버무리시면 면이 서로 달라붙지 않는답니다. 물론 프라이팬에서 물만 따라 버리셔도 되구요. 단, 면 끓인 물은 다 버리지 마시고 머그잔에 절반 정도 남겨 두세요. 나중에 농도 조절할 때 요긴하답니다.
-접시에 따로 건져 둔 스파게티면을 살짝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다시 넣어 주세요. 그리고 양파 반 개 둥둥 썰어서 올리세요. 선호하시는 식감에 맞추어 크기를 조절하시면 됩니다. 살짝 구운 베이컨과 미리 삶아 둔 각종 해산물도 넣어 주세요.
-여기에 생크림과 고르곤졸라 치즈를 넣고 잘 섞어주면 맛있는 까르보나라가 완성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까르보나라가 생각날 때면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게 해주는 파스타 소스를 부어줄 거에요. 파스타 소스하면 엄마의 비법, 마미스 시크릿(Mommy’s Secret), 맛있는 ‘마시 파스타 소스’죠?
-짠, 어떠세요? 예쁜 접시에 이렇게 덜어 후추 싹싹 갈아 뿌리고 파슬리를 더해 주면 최강 비주얼의 로니카표 까르보나라가 완성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옆 프라이팬에서 버터에 살짝 구워진 한우 등심을 면과 함께 먹기 좋게 잘라서 까르보나라 옆에 이렇게 예쁘게 나란히 놓아 주시면 입맛을 살리는 영양 만점의 스페셜 요리가 뚝딱 차려집니다. 어떠세요? 아이들이나 아빠가 특별한 요리를 찾을 때 해주시면 최고의 쉐프 소리 들을 수 있겠죠? 그럼 내일은 금주의 별난 간식 코너로 돌아올게요. 그때까지 안녕~^^
로니카는 어지러운 식탁 한쪽을 손으로 싹 밀어 노트북 놓을 자리를 마련하고 조금 전 촬영하여 다운 받아 놓은 사진들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싱크대에는 설거지 거리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로니카의 요리에 열광했다. 한때는 로니카도 자신의 요리 맛에 반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 자체에서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로니카가 만드는 음식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요리법의 적절한 짜집기에 뽀샵질이 더해진, 퓨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있는, 맛과는 상관없이 비주얼에 초점이 맞추어진 디자인 소품에 다를 바 없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혀로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들은 로니카라는 파워 블로거 브랜드를, 그 브랜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찬사를 모니터에서 핥는 것으로 욕망을 채웠다.
TV 요리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처럼 그들은 다만 로니카의 블로그를 자신의 취향에 걸맞은 놀이터로 삼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 덕에 ‘로니카의 상상퓨전푸드’ 블로그는 성장했다. 블로그의 성장은 곧 로니카 브랜드 가치의 상승과 연결되었다. 브랜드 가치의 상승은 더 많은 사람들이 로니카 블로그를 찾아올 명분을 제공했다. 그들은 로니카와 대화함으로써 유명인과 알고 지낸다는 자랑거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로니카의 댓글은 그들 모두를 잘 아는 것처럼 개개인에게 친절했지만 실상 로니카는 그들 중 아무도 알지 못했다.
로니카는 식탁에서 벗어나 차갑게 식은 요리를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에 모두 처넣어 버렸다. 배가 고팠다. 라면을 끓였다. 글을 올렸으니 사람들이 몰려와 이런저런 글을 남길 것이었다. 힘을 내서 답을 해주려면 먹어야 했다.
돈은 벌만큼 벌어 둔 셈이었다. 일을 하면 평범한 직장인 월급의 몇 배에 달하는 수입이 생겼다.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 건강을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잠시 블로그 운영을 맡긴다고 공지하고 한동안 일을 쉰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로니카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제가 아직 요리 왕초보라서ㅠㅠ 엄청 열심히 따라 만들긴 했는데 맛이 영 안드로메다네요ㅠㅠ 언제나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으려나. 왕 부러워요, 로니카님ㅠㅠ
귀찮은 질문이었다. 하나마나 한 질문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달아줄 수는 없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요리는 언어와 같죠. 자주 하셔야 해요. 즐거운 마음으로 하시다 보면 금방 나아지실 거에요. 화잇팅!!!
노트북을 쾅 닫아 버리고 본격적으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라면이야말로 완벽한 요리가 아니던가?
로니카는 언제부턴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음식 위에 수많은 사람이 질질 흘린 침이 떠돌아다니는 상상을 떨쳐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니카는 라면을 다 먹은 몸이 더 늘어지기 전에 설거지를 해치우기로 마음 먹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스펀지를 물에 적신 다음 주방세제를 잔뜩 부어 거품을 냈다.
두꺼운 사각 접시를 들어 닦기 시작하는데 접시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져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접시에 묻었던 거품이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에잇!’
짜증이 밀려왔다. 로니카는 고무장갑을 벗어 싱크대에 내팽개치고 침대로 달려가 엎어져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썼다. 한참 있다가 얼굴을 이불 밖으로 내밀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협탁 위의 스탠드에 손을 뻗어 등을 껐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잠을 자는 행위가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돈을 모았어도 로니카는 거의 쓰지 않았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던 그때 살기 시작했던 작은 오피스텔에서 이사를 나가지도 않았다.
로니카는 더 나아가고 싶은 길이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자기 싫을 때 졸리지 않고 자고 싶을 때 바로 잠들 수 있는 축복을 내려달라고 로니카는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