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일에 내려오라고 아버지는 전화했다. 이페는 알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대학생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사정이 있어서 내려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생 계좌로 200만원을 보낸 뒤였다. 100만원은 동생의 생활비와 용돈이었고 나머지 100만원은 제사 준비에 쓰라고 일렀다. 알겠다고, 동생도 짤막하게 대꾸했다.
아버지는 명문 대학 상대를 나와 번듯한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장남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고향에 내려가면 명절 때 친척들에게 큰 자식이 대기업 다닌다고 자랑할 때가 좋았다는 얘기를 꺼내곤 했다. 술이 몇 잔 들어가면 “며느리라도 보고 가지 뭐 좋은 거 있다고 그리 빨리 가나 이 사람아”가 18번처럼 흘러나왔다.
아버지나 동생에게 이페는 자신이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선배의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동생에게 둘러댔다. 아버지도 그리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언짢을 것이었다. 매월 끊이지 않고 생활비와 동생 용돈을 보내는 것으로 월급은 받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