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5. 정우

by 오종호

인적이 드문 오피스텔 앞 사거리에는 벽에서 떨어져 나간 구겨진 전단지가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고즈넉한 2차선 도로를 차들이 이따금씩 지나갔다. 녹색등으로 신호가 바뀌자 정우는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어 건너편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정우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봄 햇살이 잘 드는 벤치에 앉은 정우는 비닐봉지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먹었다. 평일이라서 공원은 한산했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노인들, 친구들과 바람 쐬러 나온 아줌마들 만이 가끔씩 공원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곤 했다.


“정우야!”


정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로니카였다. 왼팔로 책 두 권을 품에 안고 오른손으로는 조그만 가방을 들고 있었다. 로니카는 곧장 다가와 정우 옆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정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로니카에게 인사했다.


“누나라고 부르라니까, 누나 아직 결혼 안 했어!”

로니카가 정우의 머리에 꿀밤 먹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알았어요, 노처녀 누나.”


정우의 말에 로니카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주었다.


“오늘 누나가 도시락 싸온다고 했잖아. 이런 건 왜 먹고 있니? 자, 그거 그만 먹고 이거 먹자.” 


로니카는 들고 온 가방에서 보자기를 꺼내 벤치 위 둘 사이에 깔았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정우의 얼굴이 로니카가 펼친 도시락에 일순 환해졌다.


로니카의 도시락은 볶음밥과 알록달록한 빛깔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예쁜 반찬들로 가득했다. 로니카는 휘둥그레진 정우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았다.


“얼른 먹자.”


정우는 로니카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정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로니카의 표정에 슬픔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근데 학교는 왜 다니기 싫은 거니?”


조금 더 심각한 얼굴이 되어 로니카가 정우에게 물었다.


“그냥요. 재미 없어서요.”

“왜 재미가 없는데? 친구들하고 놀고 그럼 좋지 않니? 모르는 것도 배우고.”

“모르는 거 없어요.”


정우의 당돌한 말에 로니카는 웃음이 났다.


“얘 좀 봐. 모르는 게 왜 없는데? 니가 뭐 천재라도 되니 모르는 게 없게?”

“아는 게 없으니까 모르는 것도 없는 거에요.”


정우의 말에 로니카가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요 녀석”하며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음식을 먹으며 정우는 잔디밭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정우의 표정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이 아이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이곳에 변함없이 나와 있는 이 아이에게서 짙은 외로움이 느껴진다. 마치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정우를 바라보며 로니카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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