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주째 밀려 있잖아요, 이페 작가? 내일까지는 꼭 올려 주셔야 돼요.”
이페는 방 한가운데를 서성이며 기획사 팀장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네. 죄송합니다. 내일 새벽 전까지는 반드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마감일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 동안 해놓으신 게 많아서 그렇지 사실 위기인 거 잘 아시죠? 이번 작품 하시면서 약속 너무 많이 어기셨어요. 전화도 잘 안 받으시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천재 작가 소리 듣던 사람들이 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는지 아세요? 공백 때문이거든. 본인들은 힘들다고, 이제 네임 밸류 있으니 잠깐씩은 쉬어도 된다고 착각하는데 그거 시장은 안 기다리거든요. 그 사이에 쓸만한 애들 또 금방 튀어나오고 또 걔들 말 잘 듣잖아요. 그리고 요즘 영한 애들은 마케팅을 알거든. 뜰 수 있을 때 끝장을 보려고 한다고. 아시겠어요? 우리가 뭐 예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 돈 벌자고 하는 짓인데 잘해 봅시다. 그럼 믿고 기다립니다.”
“네…… 그럼.”
폰을 침대에 던져 놓고 이페는 의자에 풀썩 앉았다. 이페라는 필명으로 웹 소설을 쓰는 작가, 지금까지 2년간 열 편의 작품을 냈고 그 중 다섯 편이 십만 조회수 이상을 기록했으며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어 나름의 명성을 얻은 촉망 받는 로맨스 전문 소설가, 이게 외부에서 규정한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이페는 지쳐 가고 있었다.
남다른 스토리를 빠르게 만들어 가야 하는 스트레스보다 연애를 상상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남녀의 사랑을 묘사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여 이페의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이페는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 스토리를 다 써놓고도 기존 작품과 차별화 된 대사를 채워 넣지 못한 채 이페는 마감 시한을 넘기고 기획사의 독촉에 시달렸다.
어서 자판을 두들기라고 모니터가 말하는 듯했다. 모니터의 커서가 기획사 팀장의 눈초리처럼 이페에게 재촉하고 있었다. 이페는 모니터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으며 크게 한숨을 토했다.
이페는 새로운 상상을 잠시 멈추고 이번만은 세린과의 경험에서 빌려 오기로 마음먹었다. 냉정하게 떠난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대사는 생동감을 가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