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식 지평의 확장

by 오종호

하이데거가 자신의 주저 <<존재와 시간>>을 헌사하자 책을 다 읽은 스승은 절교 선언으로 화답했다. 그의 스승은 좀생이, 아니 후설이었다. 후설은 왜 이렇게 옹졸한 짓을 했을까?


후설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물과 세상이라는 '대상'의 의미를 파악하는 의식 활동에 천착했다. 대상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관계와 상황을 통해 '현상'의 모습을 띤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현상학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다른 모든 철학자의 철학이 그렇듯, 후설의 철학도 시대의 산물이다. 과학의 본격적 등장과 실증주의 대두 속에서 철학은 위기를 맞았고, 후설은 의식에 주목함으로써 철학의 돌파구를 찾았다. 의식은 인간의 탐구 활동의 근간이자 모든 학문의 토대이므로 의식에 대한 규명 없이 인간의 진리 탐구는 가능하지 않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논리였다.


현상의 의미는 현상을 대하는 사람과 현상이 일어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판단 중지' 한 채 '사태 그 자체로' 보자고 후설은 주장한다. 어차피 저마다 주관적인 인간에게 객관적 관점이란 가능하지 않기에 판단을 멈추고 현상이 달리 인식되고 그것에 서로 다른 의미가 부여될 가능성을 열어 두자는 얘기다. 한마디로 선입견을 모조리 제거한 상태에서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설은 판단을 중지하고 뭘 하자는 것일까? 판단을 중지하면 인간이 대상에 대해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 대상은 인간에 의해 어떠한 의미도 부여 받지 않은 상태의 현상 그 자체로 남아 있게 된다. 이렇게 아무 것도 전제되지 않은 상태의 현상의 의미를 해명하는 것을 그는 현상학의 과제로 삼았다.


현상의 의미를 해명하는 일은 우리의 의식이 현상과 관계 맺고 그것에 대해 의미를 만드는 방식을 추적함으로써 가능해진다. 후설에 따르면 의식은 '지향성'을 갖는다. 의식은 대상을 향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대상 없이는 의식 작용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워하는 대상 없이 그리움이 저절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배가 고프면 의식은 음식들을 향해 간다. 배가 너무 고프니 노트북이라도 씹어 먹어야겠다고 농담할 수는 있어도 노트북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향성은 의식과 대상의 관계 맺음이다. 아무 대상하고 관계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지향성을 확장해 보면 우리의 의식이 어떤 대상들과 관계 맺는지는 우리의 인식 지평의 수준을 결정한다. 날마다 음식, 게임, 포르노 영상이라는 대상들만을 지향하는 의식에서 차원 높은 사유가 가능하기는 어렵다. 오랜 세월 동안 범죄와 범죄자라는 대상들과 관계 맺으며 절대 갑의 위상을 누리는 동안 마음만 먹으면 어떤 놈이라도 잡아 넣을 수 있다는 반복적인 의식 활동에 오염된 검사라면 억울하게 피의자로 몰려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지탄 받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 세계는 '지평'이라는 형식으로 주어진다. 우리의 의식은 단독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이 속해 있는 배경과 상황이라는 전체 맥락 안에서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각자가 보유한 지평은 그 동안 우리가 해온 의식 활동의 결과이다. 또한 그 의식 활동이 다양한 배경과 상황 속에 위치한 대상들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연결되었는지 알려주는 지표와 같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의 지평이 모여 종합된 보편적 세계를 후설은 '생활세계'라고 불렀다. 후설의 생활세계는 오늘날 인터넷 상의 수많은 커뮤니티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보배드림과 일베라는 생활세계는 그것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평을 대변한다. 사상과 이념, 인권과 평화, 동물 복지, 환경 보호 등과 같은 가치에 따라 개인의 지평과 생활세계의 확장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후설의 현상학은 한마디로 인식론적 측면에서 현상과 의식의 관계를 탐구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의식의 현상학에서 존재의 현상학으로의 선회인 것이다. 제자의 진로 변경에 박수 대신 찬물을 끼얹은 후설의 행동은 아무래도 쪼잔해 보인다. '자등명 법등명'을 유훈으로 남긴 석가모니나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선생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내가 쓰고 있는 이 월계관을 낚아채려 하지 않는가?"라고 호통치며 선생에 대한 숭배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로 나아가라고 한 니체에 비하면 확실히 스승의 무게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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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丙戊己

卯子辰未


己庚辛壬癸甲乙丙丁

未申酉戌亥子丑寅卯 (1, 1859)


후설의 사주다. 시는 추론이다.


戊己

卯子


진월 식신월의 병화로 태어났다. 식신은 전문성이다. 운명적으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삶을 추구한다.


진토 속 지장간에는 을목 정인, 계수 정관, 무토 식신이 있다. 진토라는 식신 사회의 세부 구성 인자들이다. 관인상생, 식신정관합, 식신패인의 조합이다. 직장에 속하여 학문을 통해 명예를 얻고, 자신의 전문성으로 이름이 나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두루 암시되어 있다.


辛丙戊己

卯子辰未


기미, 무진으로 식상을 두루 쓴다. 천간의 무기토가 지장간에서 목극토로 패인되어 드러났으니 연구, 탐구의 속성이다.


사람으로 보면 제자들이다. 사회가 수많은 제자들로 넘친다. 간여지동으로 한가락씩 하는 잘난 제자들이다. 지장간에 관을 갖고 있으니 저마다 유명하게 될 자질을 갖고 있다.


아울러 식상은 하나의 '대상'이다. 이것이 군집을 이루어 있으니 '현상'의 의미가 나온다. 관계와 상황을 통해 현상의 모습을 띠는 대상과 대상인 것이다.


辛丙戊己

卯子辰未


己庚辛壬癸甲乙丙丁

未申酉戌亥子丑寅卯


대운에서 목극토로 식상패인 조합이 이루어지니, 학문을 통해 탐구하며 지식을 통해 현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辛丙戊己

辰未


己庚辛壬癸甲乙丙丁

未申酉戌亥子丑寅卯


대운에서 들어온 인성 에너지로 인해 시지의 묘목이 일찍 작동한다.


(인)묘진 인성 방합과 (해)묘미 인성 삼합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이 커지고 자기만의 철학이 갖추어진다.


丙戊己

子辰未


己庚辛壬癸甲乙丙丁

未申酉戌亥子丑寅卯


재극인 조합으로 인간 의식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판단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 의식의 지향성 개념이 도출된다.


辛丙戊己

辰未


己庚辛壬癸甲乙丙丁

未申酉戌亥子丑寅卯


일지에 왕지 정관을 깔고 대운에서 강해지니, 자기 원리 원칙을 고수한다.


辛丙戊己

子辰


己庚辛壬癸甲乙丙丁

未申酉戌亥子丑寅卯


무진 제자들과는 사이가 좋으나,


辛丙戊己


己庚辛壬癸甲乙丙丁

未申酉戌亥子丑寅卯


기미 제자들과는 사이가 좋기 어렵다. 자기의 원칙을 깨려하기 때문에 일간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하이데거는 여기에 속한다.


辛丙戊己

辰未


己庚辛壬癸甲乙丙丁

未申酉戌亥子丑寅卯


자신의 인성으로 사회의 식상을 다스리면 그 자체로 교육의 상이다. 그런데 묘목 왕지를 갖고 있고 (인)묘진 방합과 (해)묘미 삼합으로 식상을 모조리 목으로 바꾸려 하니, 제자들이 자신의 사상에 동화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제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철학도 타고난 사주 에너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타고난 에너지 조합의 범주 안에서만 철학 활동이 이루어진다. 그 범주가 인식의 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명리학을 알았다면 더 깊은 철학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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