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슈의 선물-2

by 오종호

눈 내리는 카페


지난 다섯 번의 겨울 동안 눈은 오지 않았다. 극지방 일부를 제외한 전지구적 현상이었다. 기상학자들은 인류가 지구 온도 상승을 막는데 실패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여름은 빨리 왔고 오래 머물렀다. 한 여름엔 섭씨 40도가 넘는 날이 이어졌다. 가뭄에 타 들어가던 농작물은 갑자기 며칠 동안 계속되는 폭우에 익사하기 일쑤였다.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도 점점 따뜻해졌다. 기상 캐스터는 나라의 겨울 날씨가 사실상 예전의 늦가을 수준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다시 눈이 내리기를 소망하면서도 마음속으로 기대를 접어 가고 있었다.


“엄마, 나 갔다 올게.”

“그래, 잘 놀고 와.”

“엉, 사랑해.”


고등학생으로 1년을 보낸 딸의 훌쩍 자란 뒷모습을 보며 박선미 여사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 직장을 그만두고 동네에 자그마한 커피숍을 낸 것은 순전히 수리를 위한 결정이었다. 언제든 수리가 찾을 때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그녀의 가게는 2차선 도로에 접해 있는 빌라 건물 1층에 위치에 있었고, 집은 2층에 있었다. 한 달에 이틀을 빼고 그녀는 매일 오전 11시에 2층에서 1층으로 출근했다.


빌라 사람들과 동네 주민들은 4인용 테이블이 세 개 뿐인 그녀의 가게를 사랑방처럼 애용했다. 여름이야 그렇다 쳐도 빈 좌석이 없는 겨울날에도 사람들은 테이크 아웃을 하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섰다. 그녀의 가게는 최고의 가성비를 내는 커피로 유명했다. 사람들은 저렴하지만 탁월한 맛을 자랑하는 그녀의 커피와 환한 그녀의 미소를 사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 내리는 카페’라는 이름을 사랑했다.


카페의 천장에서 내려온 가는 줄마다 눈 오는 날의 풍경이 담긴 원형의 크리스탈 장식들이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톡 건드릴 때마다 구슬 안에 오로라를 닮은 초록빛이 일렁거렸고, 바닥에 쌓여 있던 흰 가루가 눈보라처럼 일어났다. 스노우볼이라고 명명된 그 구슬들은 그녀의 계획을 들은 영서 엄마가 일주일 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가지고 온 상자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당시 영서 엄마 김선희 여사는 박선미 여사의 커피숍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아기자기한 공방’을 10년째 운영하고 있었다. 수리와 영서는 두 여사를 ‘썬시스터즈’라고 불렀다.


‘띠리리리리.’


“네, 눈 내리는 카펩니다.”

“박선미 여사, 점심 먹었어?”

“어, 김선희 여사. 그럼, 당근 먹었지.”

“미역국은?”

“어어, 먹었지 그것도.”


박선미 여사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피이. 안 먹었구나. 오늘 가게 조금 일찍 닫아라. 지금 안내 문구 써서 붙여놔. 오늘만 6시에 닫는다구. 내가 케이크하고 와인 들고 건너갈게. 오늘 우리끼리 맛난 저녁 해먹자.”

“그럴래?”

“이따 봐, 러븅.”


이젤 칠판에 6이라고 적힌 숫자를 보다가 박선미 여사는 지우개를 들어 쓱싹 지우고는 5라고 바꿔 썼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손님이었다. 지저분한 집안 꼴로 손님을 맞을 수는 없었다. 설거지도 해야 했고, 돼지우리 같은 수리의 방도 치워야 했으며, 청소기도 돌려야 했다.


“슈슈?”

“빰빠라밤, 생일 축하해요, 엄마.”


수리의 책상 위에서 잠들어 있던 1세대 대화형 미니 인공지능 로봇 슈슈가 눈을 뜨자마자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에구, 엄마 생일 기억하는 건 언제나 슈슈 너뿐이구나.”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엄마. 수리도 철들면 달라질 거예요.”

“대화만 잘 되는구만.”

“네?”

“아냐 아냐. 슈슈야. 엄마 지금부터 청소할 건데 청소 끝날 때까지 엄마 좋아하는 노래들 죽 틀어 주겠니?”

“알겠어요, 엄마. 엄마 마음에 쏙 드는 곡들로 엄선해서 들려 드릴게요. 일단 바닥에 있는 것들부터 치워 주시겠어요? 바로 청소기 돌릴게요.”

“고마워, 슈슈.”


박선미 여사는 수리가 여기저기 던져 놓은 옷가지들이며 책, 태블릿 등을 되는대로 주워 침대 위에 올렸다. 박선미 여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음악이 흘러나왔고 로봇 청소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박선미 여사의 시선에 슈슈가 액정의 왼쪽 눈을 찡그려 윙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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