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슈의 선물-3

by 오종호

영화


“와, 영화 짱이네.”

“진짜 대박.”


영화관에서 나오며 수리와 영서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람들도 저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영화 얘기를 하느라 주변이 왁자지껄했다.


최첨단 RDC(Reality Destructive Creation, 현실 파괴적 창조) 기술이 최초로 적용된 영화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가볍고 날렵하게 잘 빠진 전용 고글을 쓰고 본 영화의 영상은 까무러칠 수준이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시야에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의 뒷모습과 좌석, 영화관 시설 등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관객들은 곧장 영화 속 장소와 인물, 사건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표현 그대로였다. 마치 영화 캐릭터들의 바로 옆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와 눈의 질감도, 열대 지방의 더위와 고지대의 추위도, 꽃 향기와 풀 냄새도 모두 생생하게 전해졌다. 실제로 물을 뿌리거나 바람을 내뿜지 않아도 영화는 관객들의 감각을 모조리 자극했다. 뇌과학의 성과를 기술적으로 적용한 덕분이었다. 영화 시스템이 전송하는 전자적 신호에 따라 관객들의 뇌는 모든 것을 실제처럼 감각했다.


영화 ‘에모(emoH)’는 어느 날 하늘에 눈부신 빛이 나타난 이후로 지구에서 인간이 모두 사라지고 동물들이 지능을 갖게 된 시대에 홀로 남겨진 유일한 인간의 성장기를 보여 주었다. 인류가 남긴 유산을 이어 받은 동물들의 시행착오, 투쟁과 전쟁, 협력과 우정은 인류의 유일한 터전인 지구를 살리기 위해 지금의 인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화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자기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유일한 인간인 주인공의 선택은 예기치 않은 동물들과의 만남과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 유일무이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등에 업고 관객들의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이거, 흥행 초대박치겠는데?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한 번 더 봐야겠다.”

“그래, 나두 나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푸드코드가 있는 층으로 이동하면서 수리와 영서는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표정으로 영화에 대한 찬사를 이어갔다.


“밥 먹고 뭐하지?”


수리가 손목시계를 보며 물었다. 2시 55분이었다.


“글쎄. 카페 가서 디저트 하나 먹고 일단 서점 가서 신간 뭐 나왔는지 좀 볼까?”

“오, 좋은 생각!”


3년 전,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VR(Virtual Reality, 증강현실) 기술이 적용되면서 서점은 책을 소개하고 체험하며 다운로드 받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서점에서 종이책은 모두 철수했다. 종이책은 몇몇 대형 도서관에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있었다.


신간 코너에 있는 수십 개의 스탠드 중 하나가 비어 있었다. 수리와 영서는 종종걸음으로 재빨리 이동하여 21번 스탠드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스탠드 액정 화면 위 공중에 떠 있는 책의 제목은 ‘AI를 이기는 주식투자법’이었다. 조금 전 자리를 떠난 아저씨가 보고 있던 책이었다. 수리가 책 위에서 오른손을 펼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취하자 다음 책이 나타났다. ‘AI처럼 천재 되는 12가지 방법’이었다.


“후딱후딱 넘겨봐.”


재미없는 책들이 나오자 영서가 재촉했다.


“어? 옆에 자리 났다. 영서야, 여기 맡아.”


수리는 영서의 어깨를 잡아 스탠드 정면으로 이동하게 하고 22번 스탠드를 차지한 후 영서를 보며 윙크했다. 수리와 영서는 연신 오른손을 움직이며 신간들을 살폈다.


“어? 수리야, 이거 책으로도 있다. 에모!”

“정말? 몇 번 책인데?”

“어, 7번.”

“오케이.”


수리가 액정화면의 숫자 패드에서 7과 엔터를 누르자 에모가 나타났다. 영화 캐릭터들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오종호 지음’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수리는 ‘만일 책도 재미있다면 영화 감독과 영화 배우에 이어 작가를 미래의 꿈에 추가해 주지’라고 생각했다. 관련 법규의 제정 덕에 인간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영역은 인간의 것으로 남아 있었다.


집게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종이책을 만지는 촉감이 느껴졌다. 종이책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것은 지구에게도 인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종이책을 만들기 위해 베어지는 나무는 더 이상 없을 것이었다. 유익한 기술은 인간과 자연에 도움이 되었지만 세상에는 유익하지 않은 기술도 많았다.


주인공 시오가 공항에서 블랙와이즈라는 이름의 흑염소 할아버지를 만나는 대목부터 수리는 다시 영화의 흥분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내용은 술술 읽혔고 문장은 아름다웠다. 액정 화면에서 구매 버튼을 누르고 손목시계를 터치했다. 결제가 이루어지자 스마트폰과 손목시계로 곧장 책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손목시계의 액정을 터치하자 도서 어플 안에 ‘에모’ 아이콘이 생겼다. 아이콘을 클릭하자 손목시계 위 공중으로 책이 떠올랐다.


“뭐야? 책 산 거야?”

“응. 오늘 가서 완전 잼나게 봐주려고.”

“나도 살까?”

“아냐. 이따 우리 집에 들러서 태블릿 빌려가면 되지.”

“아하, 그렇게 좋은 방법이?”


구매한 책은 하나의 계정으로 서로 다른 3개의 기기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



‘띵동.’

“어, 엄마네?”


영서가 손목시계의 메시지 알람을 클릭하여 손목시계 액정에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수리야, 너도 봐야겠는 걸?”


영서가 오른손 검지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으로 집게 모양을 만들어 손목시계의 액정화면을 들어올리는 동작을 취하자 메시지가 확대되어 공중으로 올라왔다.


‘딸. 오늘 수리 엄마 생일이라 가게 일찍 닫고 같이 수리네 집에서 저녁 먹기로 했어. 둘이 재밌는 시간 보내고 있겠지만 이왕이면 저녁은 우리 함께 먹는 게 어떨까 싶어서 남긴다. 맛있는 거 엄청 할 거 거든. 러븅.’

“아이고, 올해 또 까먹었네. 아침에 슈슈 켰어야 하는데. 에고 머리야.”

“지난 일이니 우짜겄소, 불효녀 양반? 작전을 변경해서 이제 선물을 좀 사러 다니는 게 좋을 듯싶소만?”


영서가 급 우울해진 수리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와 안고 등을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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