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주역 <2.중지곤괘重地坤卦>-상육

도가 궁색해지니 다툼만이 일어난다.

by 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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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六 龍戰于野 其血玄黃

象曰 龍戰于野 其道窮也

상육 용전우야 기혈현황

상왈 용전우야 기도궁야


-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그 피가 황색을 검게 물들일 것이다.

-용이 들판에서 싸우는 것은 그 도가 다했기 때문이다.



<<논어>> <술이편>에 '...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구의 오불복몽견주공'이라는 대목이 있지요. 공자는 자신의 쇠약함이 깊어진 것을 한탄하며 "오래되었구나, 내가 꿈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한 지가"라고 탄식했습니다.


주공은 주역 384개의 효에 효사를 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희씨, 문왕, 주공으로 내려오는 주역 일대기를 역사와 전설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시키는 것이 우리의 바람직한 태도이겠지요. 다만, 위 논어 구절에서 우리는 '십익'을 저술할 때 효사에 담긴 뜻을 읽어 내려는 공자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해설이 없었다면 오늘날 주역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주역의 진가를 알아본 그의 안목이야말로 역사적이고 운명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성인인 공자 역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그의 해석을 완전무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효사를 있는 그대로 느껴 보려는 노력을, '십익'을 통해 공자의 해석을 뇌에 빠르게 주입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선행해야 합니다. 공자가 아니라 주역을 이해하려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역에 있어서 공자는 스스로 위대한 가이드의 역할에 머무른 사람입니다. 패키지 여행에서도 때로는 가이드의 설명에 의문을 품고, 자유시간에 다른 길로 살짝 새보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체험을 해보는 것이 필요할 테지요.


상육은 음이 극에 이른 상태입니다. 땅의 덕은 하늘의 이치를 따라 땅에서 행해져야 하는데 땅을 벗어나 하늘로 오르려 하고 있습니다. 중천건괘의 상구가 항룡유회임을 감안하면 중지곤괘의 상육도 좋은 의미를 갖기가 어려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극에 달하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상태로 전환하기 마련이고 그 전환은 불안정성을 동반하게 됩니다.


상육이 동하면 외괘는 간괘가 됩니다. 이제 그만 멈추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설괘전> 6장에 '山澤通氣 然後 能變化 산택통기 연후 능변화 / 산과 연못이 기를 통한 후에 변화할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간괘는 중지곤괘의 상육이 동할 때의 외괘요, 태괘는 중천건괘의 상구가 동할 때의 외괘이지요. 중천건괘와 중지곤괘가 어울립니다. 중천건괘의 용구를 떠올린다면 뭇 용들이 중지곤괘 상육의 자리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용들이 땅의 가장 높은 곳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용들이 들판으로 내려와 서로 싸우니 그 피가 황금색 들판을 검게 물들입니다.


후천팔괘도에서 태괘는 서방으로 해가 지는 때요, 간괘는 동북방으로 해가 뜨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일몰의 어둠이 일출의 밝음을 지배하는 형상입니다. 땅의 덕이 하늘의 이치에 어긋났으니 다시 '현'이라는 하늘의 빛깔로 땅을 뒤덮어 하늘의 섭리를 땅에 이식하는 것입니다. 리더들이 육오의 '황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 도리에 어긋나니 치마의 색깔을 바꾸는 것입니다. 마치 현재의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와도 같은 느낌이 듭니다.


상육의 '현황'을 '검고 누렇다'는 정적인 개념으로 보지 않은 것입니다. 현을 '검게 물들이다'의 동사적 속성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럴 경우 하늘과 땅이 연결되고, 용과 용이 싸우며, 하늘의 기운이 땅을 잠식하여 새롭게 재편하는 다이내믹함을 선명하게 감각할 수 있습니다.


간괘는 소남, 태괘는 소녀를 상징하니 남녀의 어울림을 뜻하기도 합니다. 대신 용이 싸우는 형국이니 다툼의 여지가 높은 상황입니다.


상육이 동해 만들어지는 지괘는 23괘 산지박괘가 됩니다. 절망을 말하는 괘입니다. 상육의 흉함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용들이 싸우는 이 상황을 음(땅)의 도가 다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산지박괘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들어있는 괘이기도 합니다. 인간 세상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로나와의 투쟁에서 우리나라가 돋보였던 까닭은 유구한 역사 속의 무수한 절망에 굴하지 않고 매번 희망을 품고 함께 싸워왔던 전사의 DNA가 우리의 피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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