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색욕

by 오종호

酒不醉人人自醉 色不迷人人自迷

주불취인인자취 색불미인인자미


-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색정이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스스로 미혹되는 것이다. -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



술만큼 찬사와 저주를 동시에 받는 대상도 드뭅니다. 가령 '한 잔의 술은 재판관보다 더 빨리 분쟁을 해결해 준다(에우리피데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사리 분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키케로)', '술은 입 속을 경쾌하게 한다. 그리고 술은 다시 마음속을 터놓게 한다. 이렇게 해서 술은 하나의 도덕적 성질 즉,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 된다(칸트)'와 같은 말은 술의 긍정적 기능을 인정합니다.


반면에 '악마가 인간을 찾아가기 너무 바쁠 때는 대신 술을 보낸다(탈무드)', '나를 취하게 하는 데는 딱 한 잔이면 족하다. 문제는 이게 몇 잔째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조시 번즈)', '더 이상 술잔에 손을 대지 말라. 가슴 속속들이 병드노니. 술의 향기는 저승사자의 입김이요, 술잔 속에 나타나는 빛은 저승사자의 흉한 눈초리다. 조심하라. 질병과 슬픔, 근심은 모두 술잔 속에 있나니(롱펠로)'와 같은 말은 술의 부정적 기능에 주목합니다.


좋은 사람과 나누는 한 잔의 술은 우정과 사랑을 도탑게 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지요. 제게 술에 대한 최고의 철학은 공자의 것입니다. <<논어>> <향당>편의 '유주무량불급난(唯酒無量不及亂)'입니다. '양을 정해 두고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취하여 품위를 잃는 경우는 없었다'는 뜻입니다. 술을 제대로 즐기는 경지는 이러할 것입니다. 술에 정신이 완전히 잠식되는 일이 잦다면 술의 양을 줄이거나 술 마시는 횟수를 줄여야 합니다. 머지 않아 술을 핑계 삼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지도 모르니까요. 아, 주취감형의 혜택을 놓치면 안 되니 그냥 만취하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의 핵심 요인은 자연 선택이 인간에게 부여한 색욕입니다. 인간에게 색욕이 없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종했겠지요. 사랑의 감정도, 섹스를 통한 쾌락도, 엄밀하게 말하면 정신적, 육체적 화학 작용에 불과합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장난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잠자리를 함께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것에는 반드시 인연의 요소가 개입됩니다. 색욕을 느끼지 못하는 상대와는 사랑에 빠질 수 없고, 잠자리를 함께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요. 아, 사랑의 감정은 그대로여도 사랑은 끝날 수 있고, 전혀 사랑하지 않는 상대라도 잠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동물보다 복잡하면서도 여전히 동물은 인간의 필요조건이니까요.


예를 들어, 술 마시고 고기 먹고 색을 탐하는 스님이 있다고 해서 너무 타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할 거 다하고 깨닫는 사람은 천재입니다. 술 안 마시고, 고기 안 먹고, 섹스 안 하기 위해서 속세를 떠난 것은 아니니까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꼭 금욕일 필요는 없습니다. 채식주의자, 비흡연자, 불음주자가 깨달음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풀소유하면서 진정한 무소유를 깨우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아, 오늘부터 천재처럼 살아가시려구요? 역시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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