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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23. 2024

경영의 목표

'권력은 한없이 몰상식했고, 정부는 한없이 불공정했으며, 정치는 한없이 무자비했고, 행정은 한없이 무능력했으며, 언론은 한없이 몰염치했으나, 시대는 민중을 깨웠고 민중은 시대를 깨뜨렸다. 제7공화국은 그렇게 열렸다.' -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읽은 어느 인문 역사서의 한 대목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라고 자칭한 이명박은 졸지에 직원이 된 국민 위에 군림하며 국익 대신 사익을 좇았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 역사는 '국가 권력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은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주었습니다. 


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스스로를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고 소개하는 문구가 박힌 명함 이미지를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내걸기까지 했지요. 그가 팔고 다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팔러 다닐 때마다 나라의 돈이 줄어들고 나라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대통령 노릇 잘하라고 표를 줬더니 한 사람은 CEO가 되어 열심히 비자금을 챙겼고, 다른 한 사람은 영업사원이 되어 뭔 지도 모를 것을 팔아 대며 나랏돈을 까먹으면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아는 것도 없고 언변도 부족한 그에게 애초에 영업은 어울리는 분야로 보이지 않지요. 그럼에도 굳이 영업을 하고 싶다면 영혼의 충만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직종을 바꾸기를 권고합니다. 대한민국에는 CEO도 영업사원도 아닌 대통령이 필요하니까요. 


'경영(經營)'이라는 단어는 문왕이 영대를 짓고자 하자 백성들이 앞다투어 돕는 바람에 하루도 지나지 않아 완성되었다는 <<시경>>의 한 대목에서 유래합니다. <<맹자>>에서 그 내용을 인용하고 있지요. (시운 경시영대 지 서민공지 불일성지 경시물극 서민자래(詩云 經始靈臺 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참고: https://brunch.co.kr/@luckhumanwork/1510)


우리나라에 CEO나 영업사원을 표방하는 기묘한 대통령이 출현하는 이유는 '경영'에 대한 몰지각 탓입니다. 국가 경영을 기업 경영이나 심지어 영업 정도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관심이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뇌리에 경제에 조예가 깊다는 인상을 심겠다는 천박한 기획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누구든 한정된 기간 동안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국가 경영의 핵심 목표는 국가의 안정적 운영과 국민의 복지 향상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각 부처가 존재하는 것이며, 겉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기대를 조정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도록 요구 받는 것입니다. 


대통령직을 기업 최고 경영자 자리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의 눈에는 엄청난 비효율적 요소들이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국방, 외교, 복지, 교육, 환경 등의 세부 조직을 이익 창출에 최적화된 기업 형태로 운영하면 효율은 증대되고 떨어지는 콩고물도 늘어날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니 국민(직원)에게 돌아갈 혜택을 줄이고, 주주(국가 경영진)와 고객(언론사를 포함한 이해 관계로 얽힌 각종 기업들)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지요. 


따라서 대통령이 할 일을 아예 영업으로 압축하는 자가 '정부의 모든 부처가 산업부처 돼야'라든가 '모든 장관과 참모진도 영업사원처럼 뛰어야'와 같은 인식을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치 일개 기업의 영업부 수장이 '영업은 잘하고 있는데 마케팅과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R&D는 뭐하고 있는 거냐? 제품을 제대로 만들어 줘야 할 것 아니냐? 외산보다 떨어지는 기술력과 브랜드를 내 개인 역량으로 극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다들 책상머리에 앉아 놀 바에야 세일즈에 동참해서 하나라도 더 팔아 와라. 나를 본받으라'며 호통치는 셈이지요. 아무 고민 없이 국가 R&D 예산을 싹뚝 자르는 이유입니다.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환자일 뿐이지요. 국가 주무부처가 정상 작동될 리 만무합니다. 국가 핵심 역량은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여민동락'의 철학을 갖지 못한 자에게 국가 경영의 임무를 맡겨서는 안 됩니다. 헛소리를 듣고 사는 것도 하루이틀입니다. 우리가 매번 그 자리에 걸맞은 사람을 가려 뽑아 앉힐 때 이 나라는 복지국가를 향해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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