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군자에게는 '혈구지도(絜矩之道)'가 있다고 했습니다. 혈구지도를 직역하면 '곱자를 가지고 재는 법'의 뜻입니다. 곱자란 목수들이 흔히 사용하는 'ㄱ'자 형태의 직각으로 이루어진 자입니다. 따라서 군자에게 혈구지도가 있다는 말은 위정자에게는 자신만의 곧은 원칙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대학>>에서 말하는 이 원칙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 속에서 경험적으로 터득되는 것입니다. 상사나 부하, 선생이나 후학, 선배나 후배, 그리고 동료 등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겪은 부당함, 불합리함을 척도 삼아 자신은 그것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입니다. <<논어>>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타인의 언행에 대한 호불호는 지극히 주관적일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상사의 쓴소리를 수긍하여 자신의 단점을 고치는 원료로 사용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것에 반감을 갖고 복수심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상사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함부로 입을 놀린 그를 응징하는 것을 자신만의 정의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비뚤어진 정의관을 가진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을 성찰하는 능력이 결여된 그는 어쩌면 리더가 되는 과정에서 '자잘한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도 내 사람은 무조건 감싸 주자'는 철학을 키울 지도 모릅니다. 그때 상사에게 기대했던 것이 그저 어깨나 한 번 툭 쳐 주는 것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조폭이나 마피아 영화의 보스처럼 'Family is everything'이라고 부르짖으며 술을 피처럼 나눠 마시고 함께 경쟁자들을 향한 전의를 불태우는 것을 큰 리더십으로 신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애초에 타인의 처지를 미루어 짐작하고 헤아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러러면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결여되거나 왜곡된 상태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그것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기 쉽습니다. 옳은 일을 행하고 있는 자기의 마음을 몰라 주는 타인들에게 서운함을 넘어 적대감을 느끼게 되고, 무지한 그들을 계몽시켜 자신의 뜻을 이해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목수의 곱자는 목재를 반듯하게 가공하는 데 유용하지만, 리더의 그것은 자신의 일그러진 원칙에 반하는 모든 것을 베고 자르고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한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패망의 길에 접어들기도 하는 이유이지요.
<<맹자>>에 공자가 '등태산이소천하(登太山而小天下)'라고 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은 흔히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인식의 지평이 달라진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높이를 강조하는 말이 아닙니다.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관점의 차이를 얘기하는 말입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천하를 굽어보며 자신의 크기에 도취하는 사람과 하늘을 우러러보며 더욱 낮아지는 사람 중에 후자의 입장에 해당합니다.
한 걸음씩 정직하게 올라온 사람이라면 그곳이 태산이든 뒷동산이든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의 시선은 하늘에 가 닿기 마련입니다. 하늘의 뜻을 아는 리더라면 자신이 딛고 서 있는 태산의 정상이 땅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대통령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주역>> 지산겸괘의 가르침입니다.
참고: https://brunch.co.kr/@luckhumanwork/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