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XI

by 오종호

실내는 타원형이었다. 천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세 개의 동그란 전등이 박혀 있었고 불빛은 주황색이었다. 자신이 앉아 있던 1인용 침대에는 회색 시트가 깔려 있었고, 회색 베개 옆에 회색 베갯잇 두 장과 회색 이불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1984. 은희의 왼쪽 손목에 하얗게 새겨진 번호는 지워지지 않았다. 자신이 왜 이곳에 갇히게 된 것인지 은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창 밖의 풍경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있는 곳은 구리 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감옥이었다. 계란처럼 생긴 감옥들이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은 언뜻 봐도 100층을 쉽게 넘는 높이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다니는 레일을 따라 계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계란들은 타워를 떠났다가 돌아와 빈 곳을 속속 채웠다. 어디론가 다녀온 계란은 타워로 돌아온 후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직으로 배열된 계란들 옆으로 지름 1m 정도의 금속관이 지나가고 있었다. 모든 계란은 그 관과 맞물려 있었다. 계란 안은 1인용 침대와 샤워 시설을 갖춘 화장실이 전부였다. 화장실은 역시 구리 빛 금속 칸막이 하나로 구분되어 있었다. 침대와 변기는 제 자리에서 조금의 이동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한 금속 틀에 갇혀 고정되어 있었다.


은희는 회색 시트가 깔려있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화장실 칸막이 벽면에서 화면이 나타나며 바깥 세상의 뉴스를 전했다.


3일전 연락이 두절된 도서출판 북티잔 대표 이은희씨의 차량으로 보이는 빨간색 페라리 자동차가 35번 국도 옆 숲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뺑소니 차에 의해 운전석 측면을 강하게 부딪힌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차량에 탑승 중이었던 이은희씨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입니다. 경찰은 평소 신망 높은 기업인이었던 이씨가 원한 관계에 얽혔을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 도서출판 북티잔으로부터 해고된 전 직원들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소환조사를 벌일 예정입니다. 한편, 회사의 CCTV 기록에 사고 당일 낮 이씨의 전 남편인 조모씨가 방문한 것으로 드러나 경찰은 조씨의 행방을 찾는데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소설가로 알려진 조씨의 행방 역시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이씨의 실종과 조씨와의 연관성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화면이 바뀌어 유니폼을 입은 미모의 여자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에그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이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준수할 수칙과 생활의 편의를 위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매일 오전 9시에 그날의 식사가 도착합니다. 출입문 하단의 배식구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힙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배식이 끝날 때까지 침대 위에서 대기하는 것입니다. 배식선이 배식을 마치고 배식구가 닫히면 그때 식사를 하십시오. 남은 음식은 별도로 제공되는 용기에 넣으십시오. 소중한 재생자원으로 활용됩니다. 음식물 외의 모든 쓰레기는 역시 식사와 함께 제공되는 봉투에 넣어 보관하십시오. 익일 배식 시간에 수거할 수 있도록 모두 제출하십시오. 입주일 기준으로 한 달에 한 번 비누, 치약, 칫솔과 같은 생활필수품이 지급됩니다. 아껴서 쓰시기 바랍니다. 절약은 인간의 제일 가는 미덕이어야 합니다. 매일 정오, 여러분이 풀어야 할 문제가 출제됩니다. 문제를 맞출 때마다 에그의 위치가 1층씩 올라가며 틀릴 때마다 1층씩 내려갑니다. 100층에 도달하면 여러분은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보내집니다. 그럼 에그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안돼! 나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아니라구! 도대체 니들 뭐야, 나를 왜 이곳에 가둬둔 거냐구! 이, 미친 놈들아!” 이미 사라진 화면 자리에 베개를 던지며 은희는 악을 썼지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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