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XV

by 오종호

“그림자들은 인간의 몸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인간의 몸이 닿는 곳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숲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자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숲은 인간의 그림자들이 숲으로 들어왔을 때 숲 속의 그림자들을 점령하고 지배하고 결국 몰아낼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인간들의 본능이므로 인간의 체취를 간직한 그림자 역시 마찬가지의 길로 나아갈 것임을 숲은 예견한 것입니다. 숲을 잔인하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라져도 숲이 살아남으면 생명은 지속됩니다. 그림자들은 지구의 입장에서 포기되어야 할 인간들을 대변합니다. 나는 숲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엔터 키를 누르자 화면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모니터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 상태로 십여 초를 머물다가 꺼졌다. 화면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다음날, 맞은편 에그 타워의 눈높이는 훌쩍 높아져 있었다. 계산이 맞다면 민성은 30층 높이에 올라와 있었다. 하루 만에 20층을 상승한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전날의 답변이 이 도시를 관장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었음이 분명했다.


9시, 배식구가 열렸을 때 들어온 것은 세 개의 종이 포장이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스테이크와 옥수수, 쌀과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주먹밥, 그리고 닭고기 튀김이었다. 에그들의 도시에서 질문과 대답은 가둔 자와 갇힌 자간의 소통방식이었고, 음식은 대답의 내용에 대한 동기부여 수단이었다. 대답의 내용에 대한 평가기준은 알 수 없었지만 민성의 입장에서 좋은 평가에 대한 의미 있는 보상은 음식이 아니라 상승이었다. 벌써 30층이나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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