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들과 함께 비행선이 있는 구역을 벗어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중앙기둥을 지나자 우진이 민성의 어깨를 툭 치며 뒤를 돌아보게 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어느새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에그 타워 앞도 마찬가지였다. 공간은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조나단이 웃으며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벽이라고 말했다.
반대쪽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금속 재질의 벽이었다. 이번에는 줄리아가 양손을 들어 벽의 두 위치에 갖다 대었고 벽이 갈라지며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로 들어서는 순간 뒤에서 벽은 곧장 닫혔다. 통로 양쪽으로 작동하지 않는 로봇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다. 비행선 승무원들이라고 우진은 설명했다. 전원이 꺼진 로봇들은 서서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을 닮은 지구상의 로봇들과 달리 철저히 인간의 모습과 거리를 둔 디자인을 채택했다고 줄리아는 말했다.
응접실에 식사와 술이 준비되어 있었고 몸에 분홍색 에이프런이 그려진 로봇이 시중을 들며 와인을 따라주었다. 로봇은 맑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적절한 유머를 섞어 가끔 대화에도 참여하면서 응대했다. 로봇의 이름은 크리스티나였다. 우진은 수술이 끝나고 민성과 함께 마시겠다며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줄리아와 조나단은 때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섞어가며 시종일관 즐겁게 떠들어댔다. 우진이 말을 전할 시간은 없었으므로 둘은 우진의 표정에서 모든 일이 잘 풀렸음을 알고 맘껏 마시고 취하려고 작정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우진은 둘을 보며 물잔을 들어 자주 건배를 외쳤다. 줄리아는 사람인양 매번 잔을 들어 마시는 흉내를 냈다.
수술실에서 우진은 기분이 좋은 듯 떠들어댔다. 자신의 복제기술을 배우는 순간 자기가 얼마나 위대하게 보이는지 깜짝 놀랄 것이라고 했다. 민성은 기대된다고 답했다. 우진이 수술 준비를 하는 동안 민성은 옷을 벗었다. 에그에서 단련되기 시작한 상체가 유리에 반사되고 있었다. 우진의 시선이 언뜻 민성의 몸에 닿았다가 떠나갔다. 잠시 후의 일을 그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은희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리기는 어려웠다. 중도에 일을 멈추기는 더욱 힘들었다. 민성은 집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의 분신이 결혼생활을 잘 유지시켜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자신의 잠재된 재능 중 전혀 다른 것이 발현될 줄은 알지 못했다. 그 점을 몰랐던 것은 우진도 마찬가지였다. 우진은, 민성이 단 시간 내에 자신의 모든 지식을 알아내리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우진은 민성에게 풋풋했던 젊은 시절의 자기 모습만을 투영하고 있었다. 우진의 실수는 젊은 시절의 자기가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민성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마음에 있었다. 그러나 체세포를 냉동시키던 그 시절 자신의 정리되지 않은 난삽한 지식과 상상력과 꿈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새로운 시대의 환경과 사람, 그리고 지식과 만났을 때 어떤 폭발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그는 알지 못했다. 지구에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자가 한 명 더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몽상초자 하지 못했다. 그가 원하는 영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눈이 감기는 동안 그는 자신의 세계가 완벽한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민성과 민성,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서로를 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