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달리기 시작한 작은 말III

by 오종호

트라이엄프의 마지막 출전 경기가 있던 날, 아침부터 주인이 초청한 많은 사람이 목장의 대형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어차피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니 낮부터 축제모드로 들어가야겠다는 것이 주인의 생각이었다. 계약관계에 따라 트라이엄프가 우승하면 상금의 30퍼센트는 또 다시 자신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트라이엄프의 자질을 알아보고 헐값에 사가려 했던 인간들은 주인에게는 사기꾼과 다를 바 없을 터였다. 오랜 목장경영을 통해 척 보면 말의 됨됨이를 알아볼 수 있었던 자신의 혜안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어찌나 트라이엄프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던지 목장 주인은 트라이엄프를 소유하면서도 모든 대회 상금의 30퍼센트를 자기의 수입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거기에 더해 대회가 끝나면 목장에서 반드시 휴식기를 거치게 하는 내용까지 계약서에 반영하였다.

금의환향하는 트라이엄프를 보러 전국에서 또 수많은 사람이 목장을 찾아올 것이었다. 마을의 술이란 술과 고기란 고기는 전날 죄다 목장으로 모여들었다. 이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원가의 세 배 정도만 마진을 붙여서 팔아도 짭짤한 수입을 거둘 것이 틀림없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숏을 잡아서 산더미같이 쌓인 고기들의 틈에 살짝 섞어버리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딱 하나 혹시나 트라이엄프가 돌아와 숏을 찾을까 봐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래도 왕성한 정자 생산에 방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니.


이미 거나하게 취한 채 마을사람들, 그리고 고향의 풍경을 취재하기 위해 발 빠르게 찾아와 더불어 술독에 빠져 버린 기자들과 어울려 TV를 보던 목장 주인은 결승선을 앞두고 무릎이 꺾이며 나동그라진 트라이엄프의 사고 모습에 혈중 알코올 농도 0.39%의 술이 단 1초만에 깨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트라이엄프가 넘어지면서 5미터를 날아가 결승점을 통과해버린 기수가 있으니 어차피 1등 아니냐고 신이 나서 술 더 내오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입에 고기 대신 자갈을 물려주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며 목장 주인은 이게 다 저 놈의 숏 때문이라고 한바탕 울화통을 터뜨리고 나서 이번에는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숭고한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술통을 들어 입안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 달라진 특이한 점이 있다면 주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술과 고기의 물가상승률이 사상 최단기간 최고상승률을 기록했다는 사실이었다.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 과거의 전설을 보기 위해 다시 목장을 찾은 많은 사람 앞에서 목장 주인은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짓기 위하여 지난 일주일 동안 거울 앞에서 연습한 혼신의 연기를 선보이는 중이었다. 물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온 숏의 삐쩍 마른 체구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NG가 날 우려가 있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소나 하마보다는 말을 더 사랑하는 미녀 리포터들이 대거 포진한 관계로 곧바로 미소를 띤 인자한 명연기로 복귀하기가 과히 어렵지는 않았다.


트라이엄프 경주마팀의 전담 수의사가 다가와 트라이엄프가 비록 달리지는 못하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빌어먹을 동물의사라는 놈이 트라이엄프의 거시기 하단에 자리잡은 우람한 방울의 기능이 정지한 듯 보인다는 말을 하지만 않았어도 농익은 표정연기는 목장 주인에게 배우로서의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여하튼 경주마 역사상 가장 빛나는 업적을 자랑하던 전설의 말은 사상 최초의 자연산 내시 말로 변신을 거듭하게 된 것이 신뢰도 95퍼센트에 오차범위 플러스마이너스 5퍼센트의 사실로 보인다는 것이 동물의사 놈의 진단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목장 주인은 온 몸과 마음의 고통이 생식기 끝으로 몰려드는 극심한 통증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연기를 중단한 채 외부 손님들을 위한 외부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던 중 화장실의 변기뚜껑을 오른 발차기로 박살내 버리려다가 미끄러져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에 미녀 리포터 중의 하나에게 발견되었다. 한참 후에 인터넷에 떠돌던 소문으로는 목장 주인의 물건은 트라이엄프의 전성기 시절의 것과 굳이 비교한다면 잣과 오이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갯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