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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Jan 06. 2022

일상의 논어 <위정爲政4>-지천명知天命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공자가 말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뜻을 세웠으며, 마흔에 미혹되지 않게 되었고, 쉰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에 귀를 따랐고, 일흔에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구절이지요. 여기에서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70대 초반에 생을 마감한 공자가 칠십을 언급했으니 이 말은 공자가 말년에 남긴 것이 분명합니다. 어느 제자의 질문이 있었겠지요. 아마도 다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선생님, 인생은 어떤 단계에 따라 살아야 합니까? 후학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선생님의 삶에 비추어 일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배워야 합니다. 배움은 평생 지속해야 하는 것이지요. 학문의 길을 걷겠다는 진로 설정의 개념이 아니라 일생 동안 배우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결심의 개념으로 우리는 '지우학志于學'을 읽어야 합니다.  


입立은 '입지立志'로 봐야겠지요. 뜻을 세운 사람은 환경과 상황을 핑계 삼아 뜻이 넘어지는 것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뜻이란 타인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삶의 목적일 것입니다.   


'불혹不惑'은 자신이 세운 뜻에서 어긋나는 것들의 유혹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 유명세를 위해 그릇된 수단을 사용하고자 하는 발심 자체가 없는 것이지요.


'지천명知天命'은 공자의 인생 구획에 대한 조언 중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논어의 마지막 대목에 있는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부지명 무이위군자야(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지하듯 공자는 <<주역>>에 대한 해설('십익')을 남겼습니다. 나이 오십에 만난 주역을 통해 그는 명命에 대해 눈을 뜨게 되지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이 내린 명'을 대면했을 때의 공자의 마음을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을 알지 못하고는 군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고 동시에 지천명을 말했으니 공자는 스스로 군자임을 자부하고 있는 셈이지요. 지천명이 가장 중요한 까닭은 지천명하게 되면 다른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순耳順'은 보통 '귀가 순하다'라고 풀이합니다. 사전에는 그 속뜻이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게 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하게 되다'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저는 위에서 '귀를 따르다'의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귀(耳)는 주역 소성괘 중 감괘坎卦에 해당합니다. 감괘는 수水로서 긍부정성을 아우르지요. 감괘의 주요 속성 중 대표적인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란 검은 물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학식과 깨달음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이지요. 또한 십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에서 귀에 해당하는 것은 계癸이며, 임壬이 집대성된 지식의 응축 상태라면 계癸는 모든 앎이 시너지를 일으켜 지혜로 폭발함을 상징합니다. 그 자체로 하늘의 뜻, 천지만물의 이치를 뜻합니다. 공자孔子의 자子는 십이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중의 하나로서 '임壬의 계癸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지지의 자子는 곧 천간의 계癸에 대응하지요. 이미 지천명한 자라면 귀가 저절로 순해지기 마련입니다. 하늘의 소리에 귀를 여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천명하지 않고는 도달이 불가능한 경지인 이순이라면 마땅히 천명에 부응하는 삶을 사는 과정에서 부단한 배움과 실천을 통해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귀(癸)'를 알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귀'를 따르게 되는 것이지요. 공자가 주역 특유의 은유와 비유에 익숙한 사람임을 감안하면 귀에 담겨 있는 상징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이순이 담고 있는 뜻이 큰 것이지요.    


지천명 후 이순의 수준에 올랐다면 '종심소욕불유구'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허튼 욕망 자체가 없을 텐데 어긋날 것도 어길 것도 있을 리가 없습니다.     


공자의 말에서 나이를 제거해야 합니다. 숫자가 사라진 상태에서 소위 '군자가 되는 인생을 살게 만드는 공자의 6단계 실천 단계'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번째 자리는 지천명의 것이어야 합니다. 천명을 알아야 비로소 뜻을 세울  있고 뜻에 부합하는 공부를   있으며 미혹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 마침내 삶의 목적지에 도달하여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깨달아 진정한 자유를 얻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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