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호 Mar 28. 2022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10>-불욕관不欲觀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자왈 체자기관이왕자 오불욕관지의


-공자가 말했다. "체제사에서 관 이후의 것을 나는 보고 싶지 않도다."  



禘는 주나라 황실에서 지내던 큰 제사입니다. 보일 시(示)와 임금 제(帝)의 결합어이니 천자가 지내는 제사의 뜻이 나오지요. 시示는 제물이나 향을 올리던 제단을 형상화한 것으로, 신에게 제를 지내면 길흉이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보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나라는 주공을 시조로 하기에 주나라로부터 체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는 항상 제주祭酒를 쓰지요. 주역(51괘 중뢰진괘重雷震卦의 괘사; 震 亨 震來虩虩 笑言啞啞 震驚百里 不喪匕鬯 진 형 진래혁혁 소언액액 진경백리 불상비창 / 형통하다. 우레가 치니 놀라다가 웃음소리를 깔깔 내지만, 우레가 백 리를 놀라게 해도 수저와 술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에도 나오듯이 창鬯이라고 하여 울금향을 넣어 빚은 향기로운 술인 울창주를 제주로 썼다고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향을 피우고 술을 따라 강신降神한 후 절을 올리는 순서로 제사를 지냅니다.  


공자는 강신 이후의 모습보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체제사의 엄숙함은 사라지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등 나라의 큰 제사에 어울리지 않는 무례한 행동들을 했겠지요. 음복飮福이랍시고 한 잔씩 하다가 취기가 오르면 제사를 지내러 모인 건지 놀려고 모인 것인지 알 수 없는 난장판으로 이어졌을 지도 모릅니다.    


예가 무너지면 예가 지탱해 주었던 정신도 무너지는 법이지요. 그러므로 공자가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붙여도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강행이 취임 이후의 독재 정치의 전조인 까닭은 안보, 정치, 경제, 외교 등 전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 백년지대계를 토론과 검증, 국민의 동의라는 민주주의적 절차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데서 전형적인 독재자의 사고방식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것이지요. 가장 경건해야 할 체제사조차 '개판 오 분 전'으로 치르는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국가 지도자의 집무 공간 이전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조차 사회적 합의 없이 멋대로 밀어붙이는 자가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할 확률은 극히 낮은 것이지요. 공자의 말을 단순히 예법을 어기는 것에 대한 탄식 정도로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9>-징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