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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Mar 31. 2022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11>-체지설禘之說


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혹문체지설 자왈 부지야 지기설자지어천하야 기여시제사호 지기장


-누군가 체제사의 이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알지 못하오. 그 이치를 아는 자라면 천하에 이를 테니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무릇 이것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오"라면서 자기 손바닥을 가리켰다.  



계속해서 체제사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체지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체의 내용이 달라지게 됩니다. 설說은 '말씀'의 뜻이니 학설, 주의, 이론 등으로 풀이할 수 있지만 여기에 적용하기엔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어語가 설說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의 '어불성설語不成說'에서 어語는 개별적으로 늘어놓는 말이요 설說은 그 말들이 주장하는 일관된 주제나 형성하는 맥락이지요. 주제가 뚜렷하고 맥락이 통하는 말은 곧 이치에 맞는 '전체로서의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체지설을 '체제사의 이치'라고 풀이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즉 혹자의 질문은 "체제사의 형식과 내용이 저렇게 정해진 근거와 이유를 아십니까?"와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기설자'의 기其는 앞의 체禘를, '기여'의 기其는 '지어천하'를 각각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로 쓰였습니다. 


공자는 체제사의 이치를 아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에 비견될 만한 엄청난 일이라고 치켜세웁니다. 공자의 말은 무엇을 의도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체제사는 본래 주나라 황실 만이 주관할 수 있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주나라 황실로부터 재가 받아 노나라에서도 지낼 수 있었지요. 하지만 노나라에서는 그것의 형식과 내용이 본래의 취지에서 크게 어그러진 상태였습니다. 본래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제사이므로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맞먹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일이라고 공자는 체제사를 인식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공자의 말을 표면적으로 읽는 것에 불과합니다. 


체제사는 나라에서 지내는 가장 성대한 제사 의식입니다. 신神으로 상징되는 초월자와 소통하려는 위정자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최고의 행사입니다. 신에게 하늘의 뜻 곧 땅에서 백성을 보살피고 뭇 생명을 양육하는 리더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는 것, 부족했던 점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 실천이 결과를 맺을 수 있도록 신의 보살핌을 기원하는 것이 신과의 소통 목적임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신의 마음에 닿기 위한 체제사의 형식과 철차, 내용 어느 하나 허투루 정해진 것이 없을 것이요, 당연히 당대 최고의 지식과 영성의 정수가 담겼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정도의 지식과 영성의 수준에 도달한 리더라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손바닥 보듯 훤히 아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의 뜻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고 정치를 펼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하늘의 이치를 땅의 섭리로 구현하는 신의 대리자로서의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의 말에는 체제사를 함부로 지내는 노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지식도, 지혜의 근간인 영성도 없는 자들이 체제사에 임하는 모습에서 현실 정치의 가망 없음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라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경험도, 지식도, 지혜도, 철학도 없이 어쩌다 리더가 된 자가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발전시킬 확률보다 동네 앞산에서 산삼을 캘 그것이 더 높을 것입니다. 나라의 앞날이 손바닥 보듯이 훤하게 예측되니 답답한 나날입니다. 손바닥을 가리킨 공자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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