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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01. 2022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12>-재在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제여재 제신여신재 자왈 오불여제 여부제


-'제사에서는 '있음'을 따른다'는 것은 신에게 제사 지낼 때는 신이 있는 것처럼 한다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내가 더불지 않는 채로 제사 지내는 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



논어 <팔일>편은 아무래도 읽는 재미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재미마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팔일 12장의 해석은 보통 다음과 같습니다.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는 조상이 계신 것처럼 하고, 신에게 제사 지낼 때는 신이 계신 것처럼 하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제사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 '제여재'를 '제신여신재'와 비교하여 신神의 자리에 조상이 생략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여기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저는 이 구절에 등장하는 여如를 다르게 풀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역>> 22괘 산화비괘山火賁卦 구삼 효사(九三 賁如濡如 永貞 吉 구삼 비여유여 영정 길 / 꾸밈 만을 좇다가는 꾸밈에 푹 빠져 버릴 수 있으니 오래도록 바르게 해야 길할 것이다)에서 저는 앞의 여如를 '좇다, 따르다', 뒤의 여如를 '같다'의 뜻으로 풀이한 바 있습니다. 적당히 꾸며야 하는데 본분은 망각한 채 꾸밈을 위한 꾸밈을 추구하는 상태가 앞의 여如라면, 뒤의 여如는 그와 같이 하면 '젖는 것과 같게 된다', '푹 빠져드는 것과 같게 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팔일 편에서 공자가 계속 얘기한 제사는 나라의 제사이지 개인의 그것이 아닙니다. 제사 지내는 주체를 국가에 국한시키지 않고 신神의 범주를 두루 확장한다고 해도 '제여재'에 조상을 쓰윽 끼워 넣는 것은 맥락에 맞지 않지요. '제여재'의 여如에 위와 같이 '좇다, 따르다'의 개념을 적용하면 본 구절을 통해 공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선명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재在'입니다.   


제례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형식 만으로는 제사를 지낸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향을 피우고 술을 따라 강신降神했으면 신이 실제로 내려와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고 믿으며 엄숙하고 정성스러운 태도로 제사에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롯이 신을 기리는 마음, 신과 소통하는 자세가 아니고서는 겉으로 아무리 술을 따르고 절을 해봐야 무의미하다고 일갈하는 것이지요. 이는 기본적으로 체제사를 지내는 태도가 엉망인 노나라 위정자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오불여제'를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제사를 지내되 신실함이 전혀 없는 상태로 이해해야 합니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같이 있어도 따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 꼭 제사뿐만은 아니겠지요. 몸과 마음으로 동시에 더불어 있을 때 우리는 '있다(在)'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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