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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04. 2022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13>-오조奧竈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왕손가문왈 여기미어오 영미어조 하위야 자왈 불연 획죄어천 무소도야


-왕손가가 물었다. "안방에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부엌에 아첨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마땅찮소.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게 되오."    



왕손가는 위나라의 대부로, 세 현인을 일컫는 삼인三人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논어 15번째 편명이기도 한 위령공衛靈公이 당시 위나라의 왕(28대)이었습니다. 위령공이 논어의 한 편을 할당 받은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위령공은 자신의 부인인 남자南子의 정치 참여를 허용했고 이는 대부들의 불만을 야기했습니다. 왕손가의 말에서 안방은 남자, 부엌은 자신을 포함한 삼인을 비유합니다. 왕후인 남자는 처소 깊숙이 들어앉아 밀실 정치를 하는 데 반해 자신들은 정치 현장에서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나라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으니, 사실상 자신들이 실권자 아니냐고 묻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천하를 주유하고 있는 공자가 위나라에 당도하여 남자를 알현했다는 얘기를 들은 왕손가가 '위나라에 왔으면 남자가 아니라 먼저 대부들을 만나 잘 보여야 하는 것'이라고 공자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왕손가의 의도를 곧바로 간파한 공자가 '불연'이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불연을 해석하면 어색하지요. 차마 직설적으로 내뱉을 수 없었던 공자의 속말은 아마도 다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왕후의 정치 참여는 왕이 결정한 사항으로 신하된 자들이 그 뜻에 따라 왕후를 도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마땅하거늘 알력 다툼이나 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그대의 말은 마땅찮으니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이어지는 공자의 말은 임금이란 하늘의 뜻을 땅에 펼치는 대리자와 같으니 불충은 곧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을 보여 줍니다. 이런 대목 때문에 공자의 사상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군주 답지 않은 자는 필부에 불과하니 죽일 수도 있다는 혁명성을 드러내었던 맹자의 사상에 비해 지나치게 고루합니다. 국민의 선택으로 리더의 자리에 오른 자가 리더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채 국민과 나라에 해악을 끼친다면 언제든 국민의 손에 끌려 내려올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것이지요. 물론, 리더 자격 없는 자들을 사전에 모두 거르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진 시회라야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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