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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27. 2022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22>-관중지기소管仲之器小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자왈 관중지기소재 혹왈 관중검호 왈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 연즉관중지례호 왈 방군수색문 관씨역수색문 방군위양군지호 유반점 관씨역유반점 숙부지례


-공자가 말했다. "관중의 그릇은 작았도다." 어떤 이가 말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관씨는 세 집 살림을 했고 관의 일을 겸하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겠는가?" "그렇다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임금이라야 나무로 문을 가리는 법인데 관중 역시 그러했고, 임금이라야 두 임금의 우호를 도모하는 자리에 잔대를 두는 법인데 관씨 역시 그러했다. 관씨가 예를 알았다면 누가 예를 모르겠는가?"    



관중은 그 유명한 관포지교管鮑之交 고사의 주인공입니다. 관중에 대해 공자는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냐. 소인배야"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삼귀三歸는 돌아갈 곳이 세 곳이라는 뜻이니 세 집 살림을 하는 것입니다. 집이 세 채라는 것이 아니지요. 관사官事는 관의 일, 관청의 일이요, 섭攝은 겸하다(한 사람이 본무 외에 다른 직무를 더 맡아 하다)는 뜻이니 '관사불섭'은 관사를 직접 두루 아우르는 대신 업무별로 많은 보조, 비서를 두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지요. 이후의 예시들은 관중이 예를 지킨 사람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관중의 이미지를 공자가 여지 없이 깨뜨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던 명 재상 관중은 분명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진(仁)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공자의 인식이지요. 비록 먼 옛날 고대 중국의 정치체제 하에서 관료로 지냈던 관중이지만 그의 물질 중심의 가치관과 백성을 통치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정치관은 오늘날 구체제의 복고가 획책되고 있는 이 시점의 각료 후보자들로 고스란히 연결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남다른 전문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할 것이 뻔해 보일 정도로 파렴치한 삶을 살아온 자들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범죄에 해당하는 자신들의 추악한 짓들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지요. 밤이슬을 맞고 다니는 도둑과 강도가 집에 들어와 재물을 주고 가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정한 자들에게 공복으로서의 정의로운 공무수행을 기대하는 것은 도둑과 강도가 돈을 갖다 주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구시대의 오물들이 윗물을 차지할 것이니 사회 곳곳에서 썩은 내가 진동할 것은 뻔할 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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