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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Apr 29. 2022

일상의 논어 <팔일八佾23>-흡순교역翕純皦繹


子語魯大師樂 曰 樂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자어노대사악 왈 악기가지야 시작 흡여야 종지 순여야 교여야 역여야 이성


-공자가 노나라 대사악과의 대화 중에 말했다. "음악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작은 합하여 일어나고 이어 조화를 이루면서도 선명하게 이어지다가 마치는 것이군요."  



공자가 노나라 최고의 음악 권위자에게 음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둘이 차를 마시며 음악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있었겠지요. 태묘에 들어갈 때도 매사를 물으며 예를 실천했던 공자가 음악에 대해 먼저 이러쿵저러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사악에게 음악에 대한 얘기를 들은 후 "이제 좀 이해가 됩니다. 음악이란 이러이러한 것이군요"와 같은 뉘앙스로 말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공자는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논어 곳곳에서 음악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이 묻어나지요. 음악에 대한 그의 이해가 담긴 위의 구절을 세세하게 뜯어보는 것은 그리 유의미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흡순교역繹이라고 정의한 그의 음악관으로부터 그가 음악을 좋아하고 중시한 연유를 추론해 보는 것에 공부의 의의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공자의 음악관이 곧 그의 정치관과 다르지 않음을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되 예를 지켜 다투지 않고 경청하며 각자 주장하는 바를 선명하게 드러내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결론을 도출하고 합의에 이르는 것이 곧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이지요. 논어에 위 구절이 담긴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저서 <<담론>>에서 공부의 이유를 문사철文史哲의 추상력抽象力과 시서화詩書畵의 상상력想像力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추상력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집어내는 능력 곧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압축하는 능력이요, 상상력은 작은 것, 사소한 문제 속에 담겨 있는 엄청난 의미를 읽어 내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강조하는 악樂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이 연상력聯想力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감상하고 악기를 연주할 때만큼 우리의 감성이 자극되는 경우는 없지요. 가사와 음악의 선율이 심장을 두드릴 때 뇌에서는 사람과 사물, 사건이 담긴 추억이 떠오르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은 그 사람을 말해 주는 법입니다. 


음악만큼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기억을 호출하여 인간의 감정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악인들은 음악의 놀라운 힘을 잘 알고 있었지요. 군부 독재시대에 많은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된 까닭입니다. 공자도 잠재된 인간의 의지와 신념을 자극하여 인간과 인간의 연대를 추동하는 음악의 강력한 힘을 알고 있었을까요? 현실 정치에 민감했던 그라면 당연히 음악의 순기능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때의 효과에 대해 충분히 인식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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