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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May 16. 2022

일상의 논어 <이인里仁4>-무악無惡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자왈 구지어인의 무악야


-공자가 말했다. "진실로 인에 뜻을 두면 악함이 없다."



이 구절에 담긴 공자의 마음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無惡에 대한 해석이 중요합니다. 무악으로 읽을 때와 무오로 읽을 때의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오라고 보면 '미워함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오직 인한 사람 만이 타인에 대한 호오好惡의 자격이 있다고 말한 직전의 구절과 맥락이 이어지는 것도 같습니다. 즉, 인仁하게 살겠다는 뜻을 굳게 세운 사람이라면 호불호의 개념 자체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한 미움의 감정조차 초월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풀이하고 나면 즉시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미움이란 꼭 벗어던져야 하는 감정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듭니다. 인한 사람은 얼마든지 타인을 미워할 수 있으나 미움을 갖고 있는 동안은 진정한 인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는 결론이 되고 말지요. 인과 진정한 인에 대한 변별을 해야 하는 숙제가 생기고 맙니다. 당연히 사전에 변별의 기준을 논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무악으로 읽을 때 우리는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게 될뿐만 아니라 보다 수준 높은 인식에 닿게 됩니다. 공자에게 인은 곧 천도天道 그 자체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천도의 발현이요, 오상五常(인의예지신)의 일부이자 전체로서 모든 덕德의 기초 개념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인이란 다름 아닌 천도의 현실적 실천입니다. 진실로 인에 뜻을 둔다는 것은 천도에 대한 순응이자 구체적 행동으로의 옮김에 대한 결심인 것이지요. 하늘에 악惡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본디 그러한 이치 만이 있을 뿐입니다. 주역의 1괘 중천건괘 괘사인 '원형이정元亨利貞'에서 하늘의 이치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오惡의 개념은 있습니다. 하늘은 천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자, 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 흉한 결과를 예비해 둡니다. 주역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선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파렴치한 자들, 끊임없이 사리사욕을 추구해 온 뚜렷한 정황 앞에서도 낯빛조차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지껄이는 자들, 공정한 실력 경쟁 대신 탐욕과 부패의 카르텔을 통해 비열한 방법으로 부와 권력을 독점하려는 자들, 이런 자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악함으로 내면이 가득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인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불인한 자들이지요. 이런 자들을 미워하지 않고 인한 세상을 만들 길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오가 아니라 무악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요, 진실로 인한 사람들에게는 악함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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